[수첩] 법치(法治)와 인치(人治)의 차이… 미국 현대·LG 추방사태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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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9회 작성일 25-09-15 09:41본문
국회도 법치가 되도록 법 제대로 손질해야
최병천 월드코리안신문 편집이사(서울=월드코리안신문) 최병천 기자
“조지아서 추방되는 우리 기술자들이 숙소에 두었던 비품은 가져오는 걸까?”
최근 조지아주 현대LG 배터리공장 사태를 뉴스로 지켜보면서 이런 작은 의문이 들었다.
미국 조지아주 현대자동차-LG 에너지 솔루션 공장에 불법취업 단속반이 들이닥친 것은 지난 9월 4일이었다. 미 연방정부는 이날 비자 위반 등으로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체포작전을 벌였다. 기습적으로 단행한 단속으로 현장에서 총 475명이 체포됐다. 한국 국적자도 300명 이상을 차지했다.
이들 가운데 한국인 316명은 구금 7일 만에 풀려나 바로 애틀랜타의 하츠필드-잭슨 국제공항으로 향했다. 이들을 태운 버스 8대가 9월 11일 오전(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 하츠필드-잭슨 애틀랜타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조지아주 엘라벨의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공장 건설 현장에서 미 이민 당국의 불법 체류 및 고용 전격 단속으로 체포돼 외진 포크스턴의 시설에 구금된 지 7일 만이었다.
포크스턴 구금시설에서 출발한 버스는 약 6시간을 달려 애틀랜타 공항에 도착했다. 버스는 곧바로 화물 청사로 이동, 전날부터 대기 중이던 대한항공 전세기 앞에 멈췄다.
이런 구체적인 보도를 보면서 “이들이 공장일을 하면서 숙소에 두고 있던 생활용품과 비품들은 어떻게 처리될까?” 하는 의문이 떠올랐던 것이다. 물건들 중에는 각자에게 소중한 사진들이나 귀중품도 있을 것이 분명하다.
이 사태 해결을 두고 한국 정부는 미 정부와 힘겨운 교섭을 했다. 조현 외교부 장관도 가서 루비오 미 국무장관과 구금사태 해결을 위해 협의했다. 투자와 통상 문제도 있어서 산업통상자원부에서도 사태 해결에 참여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 당국이 외교부가 아니라 외교통상부였다면 더 책임소재도 분명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 사태를 두고 한국과 미 교민사회에서는 다양한 시각과 분석이 나왔다. 미국 당국에 대한 섭섭함도 있고, 분노도 있었다. 또 미국의 법과 규정을 너무 안이하게 생각한 한국 정부와 기업에 대한 질타도 있었다.
이번 사건은 한국에 큰 교훈을 던졌다. 무엇보다 ‘법치(法治)가 무엇인가’를 환기했다는 생각이다. 민주주의의 근간은 법치다. 미국은 국회의원들을 ‘로메이커(Law maker)’라고 부른다. 법을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오늘의 민주주의는 대의정치다. 모두가 직접 참여할 수는 없으니 대신할 대표를 뽑아 법을 만든다. 그게 국회의 일이다. 행정부는 이렇게 국민들의 대표들이 만든 법을 집행하는 ‘법집행기구’이다. 행정부가 법을 집행하지 않으면, 역할과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미국은 법에 따라 하는 나라라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미국을 다니다 보면, ‘하지 말라는 짓만 하지 않으면 된다’는 느낌을 절감하게 된다. 자동차로 유턴을 해야 할 때도 ‘하지 말라’는 표지가 없으면 해도 되는 것이 미국이다.
이런 점이 한국과 다르다. 한국은 유턴을 할 수 있는지 아닌지를 늘 고민해야 한다. 좌회전 표시가 있는 데서 유턴해도 되는지 고민한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유턴했다가는 교통경찰이 있으면 잡힌다. 유턴 표지가 없으면 수십km를 달려서라도 표지를 찾아야 하는 게 한국이다.
한국은 허용되는 것만 정해놓은 ‘포지티브(positive) 시스템’이고, 미국은 하지 말라는 것만 하지 않으면 되는 ‘네거티브(negative) 시스템’을 갖고 있다는 점이 크게 다르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어서 법이 따라가는 것은 한계가 있다. 자율주행차가 한국에서는 주행시험을 허용하지 않고 있어서 미국 등 해외에서 주행시험을 한다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다 보니 한국은 여전히 ‘인치(人治)’에 머물고 있다. 법과 규정이 애매해서 민원을 처리하는 구청이나 시청 직원들이 머리를 싸매야 한다. 건축허가 같은 게 대표적이다. 공무원들이 재량으로 했다가는 나중에 문제가 돼 덤터기를 쓴다. 허가 관련 각종 비리도 이 때문에 생긴다.
한국도 이제 법치로 가야 한다. 그게 민주주의의 완성이다. 법치를 하려면, 국회도 일을 제대로 해야 한다. 적용이 애매모호한 법들을 고쳐야 한다. 허용되지 않는 것만 명확하게 규정해야 한다. 새로운 규제가 필요할 때는 새 법을 만들면 된다.
미 조지아주 현대·LG 배터리 공장 사건은 이런 점에서 한국에 큰 교훈을 던졌다. 이제부터는 국회도 정부도, 재외공관도 정말 ‘법치’에 근거해서 일해야 한다. 일 잘하다 괜히 묶여서 끌려가 7일 동안 고생한 한국의 전문인력들에게 미안함을 느껴야 한다. 그들이 숙소에 두고 온 짐도 잘 챙겨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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