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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케데헌의 ‘갓’이 던져준 교훈과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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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회 작성일 25-11-17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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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케데헌의 ‘갓’이 던져준 교훈과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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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준혁 유엔피스코 사무총장허준혁 유엔피스코 사무총장

전 세계를 움직이는 우리 전통문화와 ‘갓’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가 우리 전통문화와 K-팝의 결합이라는 독창적 설정, 그리고 정교한 고증으로 세계적 인기를 끌고 있다.

작품 속에는 노리개, 민화, 무속, 한의원 등 전통 요소부터 대중목욕탕, 남산타워, 라면과 김밥, 젓가락, 수저받침 냅킨 같은 일상의 디테일까지 한국적 감성이 촘촘하게 녹아 있다.

그 가운데 가장 강렬한 주목을 받은 것은 단연 우리의 전통 갓이다. 작품 속 사자보이즈 멤버들이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갓끈과 귀걸이를 흔드는 장면, 손가락으로 갓의 각도를 살짝 잡는 컷은 이미 글로벌 밈과 패션 아이콘으로 변주되고 있다. 팬들 사이에서는 ‘갓키링’이 하나의 유행 상품으로 자리 잡으며, 갓은 더 이상 우리의 과거 전통 의복이 아니라 세계 대중문화의 스타일 상징으로 확장되고 있다

‘모자의 나라’ 조선과 갓일의 3단계

조선은 ‘모자의 나라’라 불릴 만큼 풍부한 모자 문화를 갖고 있었다. 그중 갓은 남성의 신분·예절·품격을 상징하는 존재이자 하나의 얼굴이었다.

갓 제작인 ‘갓일’은 크게 세 과정으로 나뉜다. ▲말총으로 대우를 만드는 총모자장 ▲가늘게 쪼갠 대나무로 차양인 양태를 엮는 양태장 ▲두 구조물을 합쳐 명주를 입히고 옻칠해 마무리하는 입자장이다.

이 가운데 입자장이 수행하는 양태 곡선의 인두 작업, 즉 ‘트집 잡기’는 갓의 완성도를 결정짓는 가장 핵심적인 과정이다. 원래 ‘트집’은 결점을 들추는 의미가 아니라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정밀 조율이었다. 그러나 조선 후기 일부 상인들이 작은 흠을 빌미로 수선비를 부풀리는 관행이 생기면서 "트집 잡는다"는 오늘날 부정적 의미의 표현이 유래되었다.

현재의 갓 형태는 15세기 성종대에 정형화되었으며, 시대에 따라 대우의 높낮이와 양태의 너비가 변화했다. 17세기 이후 갓의 크기가 점점 커져 18세기에는 더욱 웅장해졌고, 이는 신윤복의 풍속화에서도 확인된다. 이후 흥선대원군 시기부터는 대우가 낮아지고 양태도 좁아졌다. 갓의 변화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시대정신과 사회 분위기의 반영이었다.

전통 무형유산의 위기, 사라져 가는 뿌리

세계가 한국 갓의 아름다움에 열광하는 지금, 정작 국내에서는 ‘갓일’ 보유자가 전국 단 4명뿐이며, 모두 고령이다. 갓일뿐 아니라 다른 전통 무형유산도 상황이 비슷하다. 전승 위기 항목이 25개에 달하며, 상당수는 후계자조차 없는 상태에서 사라질 위험에 놓여 있다.

지금의 역설은 여기에 있다. 한류의 파급력은 세계를 휩쓸고 전통이 세계를 움직이고 있는 데 반해, 그 뿌리인 전통은 단절의 벼랑 끝에 놓여 있는 것이다. 세계가 우리의 전통을 창작 자원으로 재해석하고 활용하는 동안, 우리는 그 전통을 지킬 기술과 장인을 잃어가고 있다.

“한국 전통을 소재로 만든 외국 작품”이라는 불편한 진실

K-콘텐츠의 세계적 흥행은 물론 반갑고 고무적이다. 그러나 한류의 현재 위치를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도 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핵심 지식재산권(IP)이 모두 미국에 있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바로 한국 전통문화를 소재로 제작된 외국 작품이라는 의미다.

이는 단순한 제작 구조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전통문화 기반 콘텐츠가 외국 창작자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한국적 소재’가 세계에서 빛나는 것은 반갑지만, 그 소재를 활용하는 주도권이 한국이 아니라는 점은 냉정한 경고다.

K-콘텐츠 세계화에 숨은 메시지

‘케데헌’은 ‘아파트’ 신드롬의 주역 블랙핑크 로제와 함께 내년 그래미에서 K-POP 최초 수상을 노리고 있다. 이를 두고 로이터는 “K-팝이 팝의 주류로 진입했음을 보여준다”, AP통신은 “그래미가 K-팝을 중심 무대에서 평가하기 시작했다”라고 분석했다.

이는 분명 자랑스러운 일이다. K-POP과 K-콘텐츠가 전 세계 누구나 즐기는 보편적 장르로 성장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한류가 더 이상 ‘한국만의 것’이 아니라는 경고이기도 하다.

세계가 자유롭게 활용하고 재해석하며, 심지어 창작의 주도권까지 가져갈 수 있다는 것이다. 문화적 리더십은 ‘첫 번째 창작자’에게 자동으로 귀속되지 않으며, 유지 노력 없이는 언제든 외부로 넘어갈 수 있다.

지속 가능한 K-컬처를 위한 국가적 과제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전통 보존’을 넘어선, 창작 기반의 수호와 강화다. 지속 가능한 한류를 위해서는 ▲전통문화·무형유산에 대한 지속적 지원 ▲전문적 교육과 후계자 양성 시스템 정비 ▲전통의 보존과 현대적 재해석이 공존하는 정책 설계 ▲전통 기반 콘텐츠 개발과 IP 확보 전략 수립이 동반되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갖춰져야만 K-컬처는 일시적 유행을 넘어, 미래 세대까지 이어질 글로벌 문화 자산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세계는 지금 한국의 문화적 코드를 배우고, 즐기고, 자기 방식으로 재창조하고 있다. 그러나 그 뿌리인 전통을 우리가 지켜내지 못한다면, K-컬처의 미래 역시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제는 그 뿌리를 단단히 지키고, 세계를 향해 더욱 깊고 넓게 뻗어 나갈 수 있도록 가꿔야 할 시간이다.

세계는 이미 한국 전통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제 한국이 해야 할 일은 그 뿌리를 지키는 능력을 다시 세우는 것이다.

“전통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며, 미래를 향한 K-컬처의 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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