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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이행수기] 의무의 기록이 아닌, 책임의 증거(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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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회 작성일 26-01-19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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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인 자녀들이 모국에 들어와 자원입대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병무청(청장 홍소영)은 이들의 군 생활 체험을 담은 수기 공모전을 진행해 이북(e-book)으로 발간해왔다. 월드코리안신문은 병무청의 승낙을 받아, 최근 발간된 이북 <2025년 청춘예찬 모범병사 병역이행 수기 공모전>에 실린 우수 수기들을 연재로 소개한다.[편집자주]

지어진(21사단 공병대대 공병 1중대 예비역 병장)
 

아버지의 사업으로 인해 가족과 함께 외국으로 이주하게 되었고, 자연스레 호주에서 학업을 이어가며 나의 진로와 커리어를 고민하게 되었다. 해외에 체류하며 병역에 대한 실질적인 강제성은 줄어들었고, 주변에서는 “굳이 가야 하냐”는 말도 심심치 않게 들려왔다. 나 역시 당시에는 병역이라는 주제보다는 진학과 진로, 그리고 커리어에 대한 열망이 더 컸기에, 병역은 어쩌면 언젠가 마주해야 할 ‘막연한 과제’ 정도로 여겼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는 언젠가 스스로 마주하게 될 질문이 늘 자리하고 있었다.

“나는 이 나라의 청년으로서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은 없을까?”

병역은 제도적 의무이기도 하지만, 나에게는 결국 ‘정체성과 태도’에 대한 질문이었다. 국가를 위한 희생이라기보다는, 내가 이 사회에 속해 있다는 증명을 스스로 하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입대를 결심했고, 단절을 감수한 채 직장도 정리하며 논산훈련소로 향했다.

훈련소에서는 ‘장애물 운용 E’라는 특기를 받고, 공병학교에서 2주간의 폭파 교육을 받았다. 여기서 다룬 폭파는 단순한 공격이 아닌, 적의 기동을 저지하거나 시간을 지연시키기 위한 전략적 폭파 작전이었다. TNT, C4 등의 실물 폭약을 다루며 도로 낙석, 교량 폭파 등 다양한 전술을 익혔고, 조금씩 ‘실전’이라는 감각이 내 안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 후, 전입한 곳은 백두산 부대로 알려진 21사단 공병대대였다. 하지만 특기와는 다르게, 내가 배속된 소대는 주로 지뢰를 운용하는 부대였다. 생소함과 당혹감 속에서도 새롭게 지뢰 운용에 대해 공부했고, 그 노력의 결과로 지작사(지상작전사령부) 주관 공병 훈련에서 우수한 성과를 거두며 중대장 표창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 순간부터 나는 단순히 ‘지시된 임무’를 수행하는 병사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책임을 다하는 용사가 되어 있었다. 내가 하는 일의 의미를 점점 깨달아가며, 하루하루의 복무가 ‘버티는 시간’이 아닌 ‘내가 책임지는 시간’으로 변해갔다.

이듬해, 상병 시절에는 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임무 중 하나였던 불모지 작전이 시작되었다. 이 작전은 단순한 수목 제거 작업이 아니었다. 우리의 임무는 북한과 마주한 최전방 GOP 소초의 감시 시야를 확보하는 것이었고, 이 구역은 6.25 전쟁 시절 남겨진 유실 지뢰의 위험이 도사리는 곳이었다. 나는 이때 처음으로 “내가 지금 국방의 최전선에 서 있구나”라고 실감했다. 눈 앞에 펼쳐진 철책 너머로 북한 지역이 선명하게 보였고, 이곳이 더 이상 교과서 속 지명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의 휴전 현실’이라는 사실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작전 당시 우리는 전신을 감싸는 지뢰 탐지 보호복을 착용하고, 지뢰 탐지기를 들고 산악지형을 헤쳐 나갔다. 평탄하지 않은 급경사의 절벽, 하네스를 착용해야만 이동이 가능한 위험 구역에서, 호미와 낫, 톱을 동원해 수목을 제거하며 밀림 같은 수풀을 하나하나 정리해 나갔다. 작전이 끝난 후, 우리는 해당 지역에 검은 차광 비닐을 덮고, 그 위에 야자 매트라는 무겁고 두터운 매트를 깔았다. 향후 수년간 잡풀이 자라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모든 작전이 마무리되고 부대로 복귀할 무렵, 나에게 불모지 작전은 힘든 육체노동이 아닌, 국방의 최전선에서 국가 안보에 기여하는 책임감을 느낄 수 있었던 기억이 되었다.

이후 병장 시절, 백석 유실지뢰 수색작전에 짧은 기간 파견되어 임무에 투입되었다. 불모지 작전과는 달리, 이번 작전은 실제로 유실된 지뢰, 불발탄, 수류탄 등을 탐지하고 수거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그날그날 작업 구역이 주어졌고, 매일 ‘이곳 어딘가에 있을지 모르는 위협’과 싸우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보호복 안에서 땀과 긴장으로 숨이 막힐 듯했고, 바이저의 보호판에 습기가 차 시야는 흐려지고, 지뢰 탐지기가 삐 소리를 낼 때마다 가슴이 멈췄다.

한 번은 실제 불발 수류탄을 발견해 수거한 일이 있었다. 그 순간의 공기는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정적이었고, 이 작전의 무게가 단지 훈련이나 작업의 수준이 아니라는 걸 모두가 실감했다. 이런 작전들을 수행하면서 나는 다시 한번 병역이라는 것이 단순히 ‘시간을 때우는 것’이 아니라는 걸 느꼈다. 누군가는 군 복무를 “18개월 동안 잠깐 다녀오는 곳”으로 말할 수 있지만, 나에게는 누군가의 삶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진짜 위험을 마주한 시간이었고, 그 안에서 책임과 두려움, 자부심이 얽힌 복잡한 감정을 배워가는 과정이었다.

또한, 전역 1달 전 호국훈련에서 나는 부대 최고참으로서 지뢰 투발기, 미클릭 등 특수 장비를 운용하며 실질적인 리더 역할을 수행했다. 중대 통신병 역할까지 병행하며 기술자이자 리더, 연결자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했던 이 시기는, 단순한 복무의 마무리가 아니라 내 복무 전체를 정리하는 상징적인 시간이 되었다.

입대 전, 나는 군 복무를 그저 ‘일시정지된 삶’처럼 여겼다. 많은 사람들이 “군대에선 배울 게 없다”, “사회성은 사회에서 배워야 한다”고 말했고, 나 역시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막상 그 안에 들어가 실제로 작전과 훈련에 참여하며 부딪혀보니, 그런 말들이 얼마나 단편적인지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공병으로서 실전적인 장애물 설치 훈련, 지뢰 탐색과 제거 작전, 유실지뢰 수색, GOP 불모지 작전까지. 이 모든 과정은 단지 ‘힘든 시간’으로만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태도로 일을 대해야 하는지, 어떻게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지, 진짜 책임이란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배우고 느낄 수 있었던 순간들이었다.

군 복무는 결국 나에게 단순한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 아니었다. 겉으로 보기엔 단절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수많은 훈련과 작전 속에서 나도 모르게 많은 것들을 깨닫고 체득할 수 있었던 값진 기회였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입대를 고민하고 있을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다. 군대는 단지 ‘가야 하니까 가는 곳’이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 스스로 증명할 수 있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 증명은 어쩌면 평생 잊지 못할 당신만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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