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이행수기] 군대는 나의 뿌리(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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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회 작성일 26-01-26 15:41본문
해외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인 자녀들이 모국에 들어와 자원입대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병무청(청장 홍소영)은 이들의 군 생활 체험을 담은 수기 공모전을 진행해 이북(e-book)으로 발간해왔다. 월드코리안신문은 병무청의 승낙을 받아, 최근 발간된 이북 <2025년 청춘예찬 모범병사 병역이행 수기 공모전>에 실린 우수 수기들을 연재로 소개한다.[편집자주]
이승준(국군 구리 병원, 상병)내 삶의 터전인 대한민국을 떠나 미국에서 새로운 기반을 다지기에 15살은 너무 늦지도 빠르지도 않은 나이였다. “나는 누구인가?“ 부모님의 갑작스러운 이민 결정. 거울을 보면 분명 한국인인데 사람들은 나를 미국인으로 대우하니 정체성에 대한 질문은 점점 커져갔다. 나는 양식보다 한식을 좋아하고, 한국말도 유창하며, 옷 또한 한국에서 가져간 옷을 즐겨 입었다. 내 뿌리는 분명 대한민국에 단단히 자리 잡고 있었다.
그렇기에 보장된 미국 시민으로서의 안정된 미래를 앞에 두고 나는 군 입대를 결정했다. 내가 나 자신을 한국인이라고 생각하고 결정한 이상, 내 안에는 책임감과 애국심이 생겼고, 그 애국심은 훗날 조국이 어려울 때 그 부름을 외면하고 싶지 않다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이 생각은 대한민국의 국기 앞에서 나의 마지막 자존심이자 자부심이며 나를 미국에서 버티고 살 수 있게 한 원동력이다. 나는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바보냐?” 친구들의 군대 얘기를 들으며 지레 겁을 먹고 내 선택을 후회할 뻔한 순간도 있었다. 부모님도 없는 타지에 혼자 떨어져 자라온 환경이 아예 다른 사람들과의 1년 6개월이라는 시간이 두려웠다. 하지만 남들이 꺼려하는 어려운 길이기에 자부심을 갖고 당차게 논산 육군훈련소로 발걸음을 뗐다. 입소하자마자 내 눈 앞에 펼쳐진 건 넓은 운동장을 가득 메운, 나와 같이 머리를 하얗게 민 동기들이었다. 유일한 차이점은 그들은 가족과 함께였지만 난 오롯이 혼자였다.
혼자 입대하여 5주간의 훈련 과정을 끝내고 동기들의 가족이 내 부모님 대신 이등병 약장을 달아줬을 때, 왠지 모를 눈물이 앞을 가렸다. 이건 훈련이 끝났다는 안도감의 눈물인가, 이 힘든 곳을 벗어나기에 나오는 행복함의 눈물인가. 그 눈물은 순전히 내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이 일을 계기로 나는 부모님의 존재가 얼마나 나에게 소중한지, 왜 부모님께 효를 다해야 하는지를 깨달았다. 힘들 때 생각하면 따뜻해지는, 무언가를 이루었을 때 가장 먼저 자랑하고 싶은 사람이 내 부모님이란 걸 깨닫게 해주기에, 군대는 내게 가장 큰 가르침을 주었다.
입대를 결정한 이후, 내가 미국에서 얻은 의학 지식과 배움을 군대에서도 활용하고 싶었다. 의무병으로 국군 구리 병원으로 배치된 후에 정신과 병동에 배치되었다. 겁도 없이 호기심만으로 근무 첫날에 출근한 나는 깨달았다. 그곳은 보기엔 멀쩡하지만 사회 혹은 군 생활 속에서 마음이 상처받고 멍들어 쓰러진 사람들이 머무는 곳이라는 것을. 병동 내부의 인테리어는 따뜻하였지만, 다른 어떤 곳보다도 인간의 아픔이 깊이 드러나는 곳이라 괴리감이 크게 느껴졌다. 간호사 스테이션 안에서 분주하게 일하는 간호 장교님들과 의무병들을 보며 환자들의 생활을 돕는다는 것, 그 의미는 단순히 환자들의 투약을 확인하고 그들의 수발을 드는 것이 아닌, 그들의 고통을 듣고, 공감하며, 때로는 끝없이 반복되는 좌절 속에서 그들이 의지할 수 있게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정신과 병동에서의 하루하루는 나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안겨주었다. 10개월간 근무하며, 정말 다양한 환자들을 맞이하고 보냈지만, 그들은 단순한 병사가 아닌 누군가의 아들이고, 친구이다. 환자들이 밤에 잠에 못 들며 뒤척일 때, 증상이 악화되어 나에게 욕설과 폭력을 행사했을 때에도, 끝까지 그들을 지키기로 다짐했다.
평소와 다름없던 날, 한 환자가 심각한 액팅 아웃 (자신이나 타인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는 폭력적 행동)을 일으켰다. 숙련된 간호 장교님들과 의무병 선임들의 협동으로 순식간에 격리 및 강박 조치가 이루어졌지만, 오히려 그것이 방아쇠가 되어 환자가 자신의 혀를 깨물어 자살을 시도하려 했다. 순간, 나는 주위에 개구기 혹은 그의 자해 행위를 저지할 도구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망설일 틈도 없이 그 환자의 입안으로 내 손가락을 넣었다. 내 손가락이 다쳐 의사라는 꿈을 이루지 못한다는 생각보다, 의무학교의 가르침에 따라 한 생명을 ‘살려야 한다’라는 의무감이 더 컸다.
그 일로 내 손가락 신경이 다쳤고, 아직도 큰 흉터가 남아 있다. 그날 밤, 침대에 누워 나는 내 손가락 끝을 보며 생각했다. 왜 내가 이렇게까지 했을까, 남도 아니고 내가, 왜 내 손을 희생했었어야 했던가.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다. 그날 내 선택은 두려움이나 후회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내 인생 처음으로 내 손으로 사람의 목숨을 구한 것이다. 그리고 응당 의무병으로서, 더 나아가 사람들을 지켜야 하는 군인으로서 해야 할 일이었다.
군 생활을 통해 나는 사람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 미국에서는 사람의 몸에 대해 공부를 하였지만, 한국에서는 사람의 마음과 생명을 지키는 책임이 무엇인지를 몸으로 배웠다. 누군가에게 군 복무는 힘든 시간으로만 남을 수 있지만, 나에게는 정체성을 조금씩 알아가는 시간이 되어가고 있다. 돌이켜 보면, 나는 이민자의 삶을 살면서도 늘 뿌리 없는 나무처럼 흔들렸다. 하지만 한국의 군복을 입고 정신과 병동에서 환자들을 지키며, 나는 비로소 내가 어디서 왔고, 누구를 위해 살아야 하는지 깨달았다. 국방이란 단순히 총을 들고 나라를 지키는 것만이 아니라, 아픈 국민을 지키고, 쓰러진 동료를 일으켜 세우는 일도 포함한다는 것. 병동에서 의무병으로 지내며 배운 소중한 가치 중 하나이다.
병역의 의무를 마치면 나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의학 공부를 계속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의사로서 다시 대한민국에 기여할 날을 꿈꾼다. 지금 이 순간에도 조국의 곳곳에서 군인들이 나라를 지키고 있다. 나는 그중 한 명으로서, 비록 작은 손길이었지만 한 생명을 지켰던 그 순간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다.
조국을 사랑한다는 것, 그것은 거창한 말이 아니다. 누군가 힘들 때 외면하지 않는 것, 나에게 주어진 일을 최선을 다해 수행하는 것, 그리고 때로는 내 몸 하나 던져 누군가를 지키는 것이다. 이것이 나라가 나에게 가르쳐준 병역이행의 의미이고 내 인생의 가장 찬란한 시간으로 기억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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