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日 롯데리아의 쓸쓸한 퇴장, 'K-푸드'에 던지는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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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5회 작성일 26-01-26 15:49본문
[칼럼] 日 롯데리아의 쓸쓸한 퇴장, 'K-푸드'에 던지는 경고
52년 역사의 항복 선언… 일본서 '롯데' 지우고 '젯데리아'로 간판 교체
외형만 커진 베트남 롯데리아… 1000만 달러 매출 뒤에 숨은 적자의 늪
'K-푸드' 열풍의 이면… 현지화와 끊임없는 혁신 없으면 언제든 '제2의 롯데리아' 될 수 있어
- 박정연 재외기자
- 입력 2026.01.23 17:55
- 수정 2026.01.23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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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본 롯데리아가 브랜드 명을 젯데리아로 바꿨다. [AI 이미지]1972년 일본 도쿄 니혼바시의 다카시마야 백화점 앞은 구름 인파로 북새통을 이뤘다. 일본 최초의 서구식 햄버거가 등장했다는 소식에 시민들은 줄을 서서 '새로운 시대의 맛'을 기다렸다. 재일교포 기업인 신격호 회장이 세운 롯데는 이 햄버거 하나로 일본 외식 시장의 판도를 흔들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반세기가 흐른 지금, 일본 롯데리아는 자신의 이름을 버리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낀 브랜드'의 저주에 갇히다
기업의 이름인 '브랜드'는 생명체와 같다. 관리에 소홀하면 병들고,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면 도태된다. 일본 롯데리아의 몰락을 두고 시장 전문가들은 일명 '낀 브랜드의 저주'라고 부른다. 압도적인 가성비를 앞세운 미국산 맥도날드와, 일본 특유의 장인 정신을 녹여낸 프리미엄 모스버거 사이에서 롯데리아는 어느 쪽으로도 길을 내지 못했다. '롯데리아에만 가야 할 이유'를 잃어버린 소비자들이 발길을 돌린 것은 냉혹하지만 당연한 결과였다.
이런 위기는 비단 일본만의 일이 아니다. 캄보디아에서는 2014년 야심 차게 진출해 한때 프놈펜을 중심으로 4개 매장을 운영했으나, 지속적인 실적 악화를 견디지 못하고 2024년 모든 점포가 철수하며 짐을 쌌다. 현지 브랜드와의 경쟁에서 밀린 것은 물론,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만한 뚜렷한 정체성을 보여주지 못한 채 10년 만에 소리 소문 없이 자취를 감춘 것이다.
베트남 롯데리아의 딜레마: '매출 1천만 달러' 시대 뒤에 숨은 적자의 늪
상황은 '제2의 고향'이라 불리는 베트남에서도 심상치 않다. 1998년 진출 이래 롯데리아는 베트남 패스트푸드 시장의 맹주로 군림해 왔다. 오랜 적자끝에 마침내 2022년 이후 연 매출 2500억 동(약 1000만 달러) 이상을 꾸준히 기록하며 외형적인 성장세를 이어오고 있다. 현재 점포 수 역시 263개로 여전히 업계 1위다. 하지만 실상은 '외화내빈(外華內貧)'의 전형이다.
지난 2024년에도롯데리아 베트남 법인은 매출 1000만 달러를 넘겼지만, 영업이익은 약 146억 동(약 8억 원)에 그쳤다. 대규모 조직과 광범위한 매장 네트워크를 유지하기에는 현저히 부족한 실적이다. 특히 노후 매장 리모델링 등에 대규모 자금이 투입되면서 당기순손실은 약 1260억 동(약 69억 원)에 달했다. 외형 성장에도 불구하고 수익성은 뒷받침되지 못한 채, 사실상 적자 영업을 면치 못한 셈이다.
반면, 경쟁 상대인 필리핀의 국민 브랜드 '졸리비(Jollibee)'의 추격은 실질적이고 매섭다. 졸리비는 지난해 9월 기준 점포 수를 224개까지 공격적으로 늘리며 롯데리아를 바짝 추격했다. 특히 수익성에서는 이미 판도가 뒤집혔다는 평가가 나온다. 졸리비 베트남은 현지 입맛을 정교하게 공략한 전략을 앞세워 중소도시까지 시장을 확장했고, 그 결과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이 1800억 동(약 100억 원)을 넘어섰다. 이는 전년 대비 20% 이상 증가한 수치다. 매출 외형에 비해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롯데리아와 달리, 졸리비는 수익성을 기반으로 한 내실 성장에 성공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름만 바꾼 '젯데리아', 혁신 없는 재창조는 껍데기일 뿐
최근 일본 내 롯데리아 매장들은 '젯데리아(ZETTERIA)'라는 생경한 간판으로 갈아치우고 있다. 롯데리아의 히트작인 '절품(絶品·젯큐)버거'와 카페테리아를 합친 이름이라지만, 속내는 뻔하다. <닛케이>(Nikkei)와 <재팬타임스> 등 현지 주요 외신은 롯데리아를 인수한 젠쇼홀딩스가 기존 브랜드 색깔을 지우고 신규 브랜드인 '젯데리아'로의 전환을 가속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국내 언론들 역시 이를 두고 '롯데'라는 이름으로는 더 이상 승산이 없다는 경영진의 사실상 항복 선언이라 평하고 있다. 실제로 2년여 만에 매장 수가 40%나 급감했다는 통계는 그간의 경영 부실을 처참하게 증명한다.
이 사건은 전 세계로 뻗어 나가는 K-푸드 열풍에도 서늘한 경고를 던진다. 지금 한국 을 대표하는 음식들은 전례 없는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일본과 동남아에서 롯데리아가 보여주듯, '한국계'라는 배경만으로는 시장에서 영원히 살아남을 수 없다.
현지 소비자들은 냉정하다. 트렌드에 발맞춘 끊임없는 현지화와 대체 불가능한 브랜드 정체성을 갖추지 못한다면, 오늘의 열광은 내일의 외면으로 바뀔 수 있다.
동양의 고전은 '이름이 바르지 못하면 말이 순하지 않고, 일이 성취되지 않는다(名不正則言不順)'고 가르친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정반대다. 이름이 문제가 아니라 알맹이가 문제였다. 50년 넘게 쌓아온 브랜드 유산을 통째로 지워야 할 만큼 현장 혁신에 무뎠고, 소비자 취향의 변화를 외면했다.
일본 롯데리아의 퇴장은 K-푸드 세계화를 이끌고 있는 우리 기업들에도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간판만 바꾼다고 쇠락한 브랜드가 되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54년 전 1호점을 열며 마주했던, ‘업(業)의 본질’에 대한 치열한 성찰이 없다면 ‘젯데리아’ 역시 이름만 남은 껍데기에 그칠 수밖에 없다.
K-푸드가 일본 롯데리아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의 인기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소비자들은 언제든 돌아설 수 있다. 끊임없는 현지화 노력과 재창조, 그리고 본질을 향한 자기 혁신의 긴장을 놓지 않을 때에만 글로벌 시장에서 지속 가능한 생명력을 확보할 수 있다.
박정연 재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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