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이행수기] 국가와 민족을 위해, 한 걸음 전진(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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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3회 작성일 26-02-02 09:12본문
해외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인 자녀들이 모국에 들어와 자원입대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병무청(청장 홍소영)은 이들의 군 생활 체험을 담은 수기 공모전을 진행해 이북(e-book)으로 발간해왔다. 월드코리안신문은 병무청의 승낙을 받아, 최근 발간된 이북 <2025년 청춘예찬 모범병사 병역이행 수기 공모전>에 실린 우수 수기들을 연재로 소개한다.[편집자주]

“왜 굳이?” 내가 군 입대를 결심한 후 가장 많이 들은 말이었다. 20대 중후반의 나는 남부럽지 않은 커리어를 보내고 있었다. 코넬대학교를 졸업하고, 세계 금융의 중심지인 뉴욕의 월 스트리트에서 2년간 근무한 후, 칭화대학교에서 장학금을 받고 국제관계 석사 학위를 마친 상태였다. 나는 미국 영주권자이기에 입대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병역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나에게 마음의 짐처럼 따라다니고 있었다.
월 스트리트는 업무 강도가 굉장히 높다. 뉴욕은 “절대 잠이 들지 않는 도시”라는 별명이 있는데, 2년간 수많은 밤을 지새우며 나는 그 뜻을 이해하게 되었다. 내가 일하던 곳은 월가에서도 가장 큰 은행인 J.P. Morgan의 인수합병 자문 부서였는데, 한 거래당 수조 원이 넘는 돈이 오갔고 인력 또한 소수였기에 매일 느끼는 중압감 또한 엄청났다.
그 무게를 이겨내고 업무를 성공적으로 해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대한민국을 대표한다는 책임감이었다. 아무리 미국 영주권자이고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했어도, 내 팀에서 나는 “한국인”, “Korean”이었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한창 화제일 때, 직장 동료나 상사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 대해 묻고 가고는 했고, 가끔 업무 자료에 대한민국 기업의 이름이 나오면 혼자 괜히 흐뭇해했다. 내가 잘해야 한국인, 나아가 대한민국에 대한 좋은 인상을 남기고, 월가에서 일하는 한국인들이 더 많아지는 선순환 효과가 생긴다고 믿었기에 남들보다 더욱 노력했고, 그 결과 실력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이러한 책임감은 내게 높은 연봉과 개인적인 성취보다 더욱 보람찬 것이 있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이는 내가 칭화대학교의 슈워츠먼 장학금 수상자로 선정되어 1년 동안 중국에서 공부하며 더욱 구체화되었다. 슈워츠먼 장학금 프로그램은 약 5,000명의 지원자 중 150명의 “미래 글로벌 리더”를 선발해 1년간 중국 칭화대에서 국제관계 석사 학위를 취득하는 프로그램으로, 매년 1~2명 정도의 한국인만이 선발된다.
슈워츠먼에서는 모든 수업이 토론식으로 진행되며, 미·중 관계부터 국제 무역·관세, 기후변화, AI 거버넌스 등 모든 국제 현안을 아우르는 수업을 듣는다. 한국이 관련된 주제가 나올 때마다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집중되었기에, 나는 수업을 받기 전마다 각 현안에 대한 우리나라 입장에 대해 읽고 준비해 가야만 했다. 매일 열띤 외교 정책 토론을 벌이며 서로의 입장 차이를 확인할 때도 많았지만, 새벽에 먹는 한국 라면이 제일이라는 사실에는 아무도 이견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내 석사 친구들에게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눈부신 경제성장, 그리고 민주주의를 경험시켜 주고 싶다고 생각했고, 겨울방학 기간에 30여 명을 초청해 한국의 기업 및 문화 탐방을 주최했다. 내 친구들은 내가 익숙하다고 여긴 모든 것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며 신선한 질문들을 던졌다. “왜 지하철이 이렇게 깨끗하지?” “왜 서울의 이름은 서울일까?” 같은 질문들에 답해 주며, 내가 대한민국에 대해 몰랐던 부분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덕분에 나의 나라를 한층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또한, 내가 당연하게 누려 왔던 자유와 평화, 민주주의 같은 가치들이 본인들에게는 간절한 바람이라고 얘기하는 몇몇 친구들을 보며 안타까웠지만, 한편으로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자부심과 애국심이 샘솟아 올랐다.
월 스트리트, 그리고 석사 과정을 거치면서 어느덧 내 상상 속 나의 미래 모습에는 국가와 민족에 이바지하는 나 자신이 있었다. 무엇을 어떻게 할지는 확실하게 정하지 못했지만, 나중에 국제무대에서 당당하게 한국인으로 활동하며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결심은 한층 확고해졌다. 이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것은 당연한 전제조건이며, 나라를 지키는 경험이 그 꿈에 한 발짝 다가갈 수 있는 자양분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게 되자, 입대는 너무나 쉬운 결정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입대를 하게 되었고, 1군수지원사령부에 배치되어 유류관리병으로써 육군의 피와 같은 존재인 유류 보급을 담당하고 있다. 이제 군 생활도 반환점을 돌아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 돌아보면 입대 후 후회 없이 군인의 본분을 다하며 살았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할 수 있다. 특히, 올해 6월에 참여했던 한미연합훈련을 통해 국가를 대표한다는 책임감과 내가 가진 능력으로 국가에 작게나마 기여를 했다는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훈련 시작 2주 전, 중대장님이 나를 부르셔서 임무를 하달해 주셨다. 우리 중대가 미군에게 대한민국 육군의 접이식 유류탱크 운용법과 유류 품질 시험 과정에 관해 설명해야 하는데, 내가 통역을 담당하셨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 말을 듣자마자 제일 먼저 찾아온 감정은 “내가 잘해 낼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었다. 나는 군사영어나 유류 전문용어는 하나도 몰랐고, 수많은 사람 앞에서 발표해야 한다는 떨림, 실수에 대한 두려움까지 온갖 걱정에 사로잡혀 있었다. 하지만 이는 곧 중요한 역할을 맡아 나 자신을 증명할 수 있다는 확신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이는 내 능력을 통해 나라에 기여를 하고, 성공적인 임무 수행을 통해 대한민국 육군의 위상을 드높일 수 있는, 내 꿈과 맞닿아 있는 좋은 기회였다.
훈련 준비 기간 동안 군사영어집과 해외 자료를 찾아보고, 한국어 설명을 맡으신 주무관님들과 호흡을 맞춰보며 열심히 준비하다 보니, 대한민국 육군을 대표해 잘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훈련 둘째 날, 드디어 내 시간이 왔다. 우리 중대장님이 40~50명 정도 되는 미군들, 대대장님, 그리고 단장님 앞에서 우리 중대를 소개하시기 시작하셨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16보급대대 3종보급중대입니다.” “We are 16th Supply Battalion, 3rd Company…” 그 옆에서 통역하던 내 목소리는 살짝 떨렸지만, 어느 순간 내 앞 사람 하나하나와 눈을 맞춰가며 편안하고 자신감 있게 발표를 하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궁금한 점도 물어보고, 애로사항도 공유하고, 군인으로서 함께 훈련하며, 비록 인종과 언어는 다를지 몰라도 우리는 서로 동지애를 느낄 수 있었다. 나는 훈련 기간 대한민국 육군과 미군 사이의 가교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했다. 심지어 통역병이 부족해 내가 잠시나마 파견 아닌 파견을 나가 우리 중대 인원들에게 미군 장비를 설명하기도 했다. 훈련이 끝나는 날 공로를 인정받아 미군 연대장 표창과 메달을 수여받았을 때의 성취감은 잊을 수 없다. 표창을 수여해 주신 미군 중령님께서 수상자들에게 격려의 말씀을 하실 때 통역할 인원이 없어 내가 상장을 들고 그대로 옆에 서서 격려사를 통역한 재미있는 일도 벌어졌다. 중대 차원에서 이뤄진 작은 훈련일지 몰라도, 우리가 한미동맹의 굳건함에 조금이라도 기여했다는 생각에 뿌듯해하며 캠프 험프리스를 떠날 수 있었다.
이처럼 지금까지의 군대에서의 시간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기여하고 싶다는 나의 꿈에 한 발짝 더 가까워지는 시간이었다. 또한,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며 남는 시간에 틈틈이 자기계발을 하며 밖에서 관심이 있었지만, 시간이 없어서 하지 못했던 것들을 마음껏 하고 있다. 군에 입대한 후 읽은 책은 40권이 넘어가고 있고, 틈틈이 중국어와 코딩도 공부하고 있으며, 육군창업경진대회에도 참가하는 등 내 구체적인 꿈을 찾기 위한 노력도 병행하고 있다. 또한, 내 경험을 발판 삼아 나보다 나이가 대부분 어린 후임들에게 영어도 가르쳐주고 커리어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는 멘토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지금까지 군대에서의 경험은 내 꿈을 향한 디딤돌이자, 한 단계 더 성장하기 위해 자신을 갈고닦는 시간이었다. 또한, 밖에서 이룬 성취와 군에서의 임무 수행은 별개임을 깨닫는 과정에서, 나에게 겸손이라는 중요한 가치를 다시금 일깨워 준 시간이기도 하다. 나중에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서 국제무대를 누빈다는 꿈을 이루었을 때, 내가 내린 자원입대라는 선택 그리고 군대에서의 시간이 내 꿈을 향한 한 걸음 전진이었다고 되돌아보게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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