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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에서 북한 거쳐, 한국행 기차를 기다리는 ‘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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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2회 작성일 26-02-02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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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에서 북한 거쳐, 한국행 기차를 기다리는 ‘그 사람’


서만교 민주평통 중국지역 부의장 인터뷰
한반도 통일, 중국을 지렛대로 삼아야
한한령 해제, “원상 복귀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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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만교 민주평통 중국지역 부의장과 인터뷰를 하고 있는 장면서만교 민주평통 중국지역 부의장과 인터뷰를 하고 있는 장면

고교 시절부터 그는 중국이 늘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대학(경영학과)에 다니면서도 중국어를 제2외국어로 선택할 정도로 중국에 매료됐다. 대학을 졸업한 뒤 그는 유학을 결심했다. 당시 미국이냐 중국이냐를 놓고 고민하던 끝에 그가 평소 존경하던 김대중 당시 총재가 “중국으로 가라, 중국은 워낙 큰 나라여서 나라가 아니라, 하나의 세계가 될 것”이라는 조언을 듣고 1993년 과감하게 중국행을 선택했다.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 중국은 아직 낯선 공간이었고, 베이징으로 가는 직항편조차 자유롭지 않았던 시절이다. 그는 비행기를 타고 천진을 거쳐 기차로 베이징에 들어왔다. 언젠가 한국으로 돌아갈 때는 비행기가 아니라, 북한을 지나 기차를 타겠다는, 막연하지만 분명한 상상을 품었다.

“통일을 염두한 말이냐”는 기자의 질의에 “통일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북한과 소통이나 개방을 기대한 것은 사실”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이어 “한때 대륙간 열차가 서울을 출발해 북한을 거쳐 중국까지 이어지는 징조가 상당 부분 진척이 되다가 정치적 이유로 갑자기 중단됐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7년여 동안 중국에서 유학을 하면서 시쳇말로 피 터지게 공부한 끝에 칭와대와 중국사회과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고 한다. 거시경제를 공부했던 그는

2000년 포스코에 입사, IT와 대외협력, 중국 정부의 투자 알선 등을 담당하면서 부사장까지 올랐다가 2022년 퇴사한 뒤 현재는 무역 등 자영업을 하고 있다.

통일의 현실적 관문, 중국

그가 중국을 통일의 ‘지렛대’로 인식한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중국은 북한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유일한 강대국이며, 정치·경제·외교적으로 북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분단국가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중국 사람들에게 대만과 통일을 원하느냐고 물으면 100이면 100 다 원한다고 말합니다. 그 통일이 대만을 포함한 ‘하나의 중국’이라는 점은 다르지만, 분단을 비정상 상태로 인식한다는 점에서는 우리와 같습니다.”

이 공통의 인식은 그가 중국 사회에서 통일 담론을 풀어내는 중요한 출발점이었다. 그는 중국을 설득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통일의 언어를 공유할 수 있는 상대라고 보았다.

그는 “너희도 통일을 원하지 않느냐, 그렇다면 우리도 통일을 원한다”는 단순하지만 본질적인 질문을 통해 중국 사회에서 민주평통 활동의 정당성을 설명하는 논리를 만들었다.

그의 활동은 언제나 ‘민간’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정부 대 정부의 외교가 경색될수록, 민간의 공공외교는 더 중요해진다고 믿었다. 특히 중국처럼 체제와 이념의 경계가 분명한 사회에서는, 공식 채널보다 학술·문화·인적 네트워크를 통한 우회적 접근이 현실적이었다.

현재도 북경대에서 한반도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가 주목한 영역은 학술 교류였다. 북한을 직접 테이블로 끌어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만, 중국의 대학과 연구기관이 주최하는 학술대회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중국의 ‘우산’ 아래에서라면 북한 학자들이 참여할 여지가 생기고, 그 공간에서 한국·중국·북한·일본 학자들이 한반도 문제를 논의하는 장이 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주최하면 안 나옵니다. 하지만 베이징대나 중국 학술기관이 주최하면 나올 수 있어요. 그래서 중국의 힘을 빌리는 겁니다.”

이는 통일을 단번에 이루겠다는 이상론이 아니라, 현실의 벽을 인정한 상태에서 가능한 한 발을 내딛는 전략이다. “통일의 분위기를 확대하기 위해 조선족을 끌어 들이면 어떻겠느냐”는 기자의 질의에 그는 “중국 정부는 민족 문제에 매우 예민하다”며 “조선족이 한국의 통일 문제에 전면적으로 나서는 것을 중국이 긍정적으로 볼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분석했다. 통일을 명분으로 그들에게 부담을 지우는 것은 오히려 장기적으로 한중관계와 한인사회에 득(得)보다는 실(失)이 될거라는 그의 판단이다.

한인사회 봉사, 통일의 또 다른 토대

그의 통일 활동은 결코 거창한 담론에만 머물지 않는다. 중국 전역에 흩어져 있는 한인사회가 안정적으로 뿌리내리는 것 역시 통일의 중요한 토대라고 보았다. 교민 사회가 흔들리면, 통일에 대한 관심과 역량도 약화된다는 판단에서다. 중국에는 5개의 민주평통 협의회가 있다. 한동안 각 협의회는 지역별 활동에 집중하며 개별적으로 움직였다. 그는 이 구조의 한계를 느꼈다. 통일이라는 큰 목표 아래, 보다 유기적인 연대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월 4일 베이징의 한 호텔에서 재중 교민들과 간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는 장면.(사진, 이재명 대통령 오른쪽 부터 서만교 부의장, 노재헌 대사)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월 4일 베이징의 한 호텔에서 재중 교민들과 간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는 장면.(사진, 이재명 대통령 오른쪽 부터 서만교 부의장, 노재헌 대사)

그래서 제안한 것이 공동 프로젝트였다. 독립운동 사적지 지원과 역사 강연을 중국 전역 차원에서 연계하고, 청년과 차세대를 대상으로 한 통합 통일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구상이다. 중국에서 태어나거나 성장한 한인 청년들이 ‘통일은 먼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문제’라는 인식을 갖게 하는 것이 목표였다.

이날 인터뷰 장소는 북경한국인회 사무실. 민주평통 베이징협의회와 공동으로 사무실을 쓰고 있었다. 한국인회와 정체성이나 성격이 조금 다르지만 서로 싸우기보다 뭉치자는데 큰 뜻을 모으고 사무실을 합쳤다고 한다. 5~6년 전 까지만 해도 북경에서 한인 단체들의 갈등은 위험 수준을 달리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지난해 한국국제학교에서 민속페스티벌을 하는데 북경 소재 6개 단체가 현물이지만 5000만원 어치를 후원했어요. 시진핑 주석의 말씀대로 ‘석자 얼음이 하루아침에 안 녹는다’고 했는데 북경 한인단체들은 ‘석자 얼음 중에서 두 자 반은 이미 녹았다’고 봅니다. 아직 완성체는 아니지만 조선족 단체를 포함해 이렇게 틀이 갖춰진 곳은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것입니다.”

6개 단체는 북경한국인회를 비롯해, 북경한국상회, 민주평통 베이징협의회. 조선족발전협의회, 애심네트워크, 한국중소기업협의회 등을 말한다. 다만 중국한국인회총연합회와는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 방중, “교민들에게 큰 위로”

지난 1월 초 이재명 대통령의 중국 방문 당시 동포 간담회 분위기를 물었다.

“참석자 대부분이 대통령을 향해 그동안 쌓인 고충과 어려움을 쏟아냈어요. 사드 이후 너무 오랫동안 힘들어서 소원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중간에 대통령에게 오히려 죄송하다고 말씀을 드리기도 했습니다.”

중국 교민사회는 지금 구조적인 위축 국면에 놓여 있다. 교민 수는 감소하고 있고, 중국 정부의 외국인 정책은 이전보다 훨씬 경직됐다. 사드 사태, 코로나19를 거치며 반외국 정서가 제도와 일상 속에 깊이 스며들었다. 한국인은 물론 미국·유럽 국적자들까지 ‘탈중국’을 고민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교민사회가 대통령의 국빈방문에 거는 기대는 컸다. 정치적 해빙의 신호가 민간 영역까지 확산되지 않는 한, 교민들의 삶은 나아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걸 풀 수 있는 시발점은 결국 대통령 방문밖에 없습니다.”

이런 인식 속에서 이번 방문이 예상보다 빠르게 이뤄진 점은 교민사회에 큰 의미로 다가왔다. 1~2년만 늦어졌어도 해빙의 시점은 그만큼 뒤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의 반응 역시 이전과는 달랐다. 과거 정상 방문 때마다 불거졌던 의전·경호 논란은 거의 없었고, 전반적으로 ‘관계를 개선하고 싶다’는 메시지가 읽혔다. 

그는 이를 두고 “중국 역시 일본과의 관계, 대외 환경 등 여러 문제를 풀기 위해 한국 대통령의 국빈방문을 환영할 수밖에 없는 시점이었다”고 분석했다.그러나 기대를 과도하게 부풀리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분명하다.

“정상회담이 열렸다고 해서 한한령이 단기간에 전면 해제되고, 과거 수준의 문화 교류가 회복될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중국 사회는 정책적으로 점점 더 사회주의적 색채를 강화하고 있고, 외국 문화에 대한 개방성은 과거보다 크게 줄어들었다는 일반적인 평가입니다.”

서만교 민주평통 중국지역 부의장.서만교 민주평통 중국지역 부의장.

한때는 베이징에서만 연간 3~4차례 대형 K팝 공연이 열렸고, 인순이·윤도현 같은 가수들이 극장에서 자유롭게 공연하던 시절도 있었다. SM을 비롯한 대형 기획사들이 아이돌 그룹을 묶어 대규모 콘서트를 여는 것도 가능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상하이나 일부 외국인 밀집 지역에서 제한적으로 공연이 열리는 정도가 현실이다. “예전의 100% 회복은 어렵지만, 50% 정도만 회복돼도 숨통은 트일 것”이라는 것이 그의 냉정한 진단이다.

서만교 부의장은 여전히 “언젠가 한국으로 돌아갈 때, 비행기가 아니라 기차를 타고 돌아가고 싶다”는 꿈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서울에서 출발해 평양을 지나 베이징을 거쳐 유라시아로 이어지는 철로는, 단순한 교통망이 아니라 한반도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중국을 지렛대로 삼은 그의 통일 구상은 거창하지 않다.

대신 느리고, 조용하며, 현실적이다. 한인사회를 돌보고, 중국 사회를 이해하고, 가능한 틈을 찾아 한 발씩 내딛는 방식이다. 그가 평생 중국 현장에서 봉사해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통일은 어느 날 선언으로 오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 사회와 사회 사이의 연결, 그리고 국경 너머를 향한 끈질긴 상상력 속에서 조금씩 다가온다. 그가 아직 타지 못한 그 기차는, 어쩌면 이미 레일 위에 놓여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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