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재외동포재단 26년의 회고와 전망-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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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9회 작성일 23-11-21 09:51본문
지난 6월 5일 재외동포청 출범으로 재외동포재단이 시대가 막을 내렸다. 재외동포재단은 1997년 10월 30일 우리 정부의 재외동포정책 집행기관으로 설립돼 26년간 활동하다 2023년 6월 5일 재외동포청 출범과 함께 해산됐다.
1993년 출범한 김영삼 정부는 세계화를 국정지표로 내세우면서 재외동포사회의 교민청 설치 요구에 눈을 돌렸다. 재외동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증가하면서 정부는 재외동포들의 혈통과 문화, 전통의 뿌리가 한국에 있다는 사실을 재확인하고 거주국 내에서 안정된 생활을 유지하며 존경받는 모범적인 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과 함께 동포청 설립, 이중국적 허용, 재외동포의 국내 재산권 행사 등을 검토했다.
교민청 설립 검토 과정에서 오해도 생겼다. 각국에서 한국 정부가 한국혈통에 대해 관할권을 가지려는 것으로 받아들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당시 외무부는 각국으로부터 적지 않은 항의를 받았다. 이 때문에 정부는 교민청 설립은 불가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재외동포정책 수립은 외교부가 담당하고 집행을 담당하는 기관으로 민간법인인 재외동포재단이 설립된 것은 이 같은 배경에서였다.
재외동포재단은 북방외교의 성과로 인한 동포사회 외연 확대와 외국 정부와의 외교적 갈등에 대한 고려 아래 출범했다.
1991년 말 구소련과 동유럽 공산체제의 붕괴와 북방외교는 중국 조선족 및 구소련지역 고려인 등이 재외동포사회로 포함되는 성과를 가져왔다.
재외동포사회는 1980년대 초반부터 ‘세계 각국에 거주하고 있는 모든 재외동포와 관련된 업무를 포괄적으로 전담하는 성격’의 교민청 설립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이 같은 요구에 일부 부응하되 외국 정부와의 외교적 갈등을 고려한 결과가 재외동포재단 출범으로 귀결된 것이다.
재외동포재단은 재외동포재단법에 근거해 출범했다. ‘재외동포들이 민족적 유대감을 유지하면서 거주국에서 그 사회의 모범적인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설립됐다. 설립 경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1995. 12. 18 세계화추진위원회에서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재외동포정책위원회 설치 결의
- 1996. 5. 3 ‘제1차 재외동포정책위원회’에서 재외동포재단 설립 의결
- 1997. 3. 27 재외동포재단법의 국회 통과로 재외동포재단 설립의 법적 근거 마련
- 1997. 10. 30 재외동포재단 출범
재외동포재단 출범 첫해인 1998년도 재단 인력 정원은 35명, 예산은 100억원이었다. 이후 정부 재외동포정책과 재외동포사회의 수요 반영, 재외동포재단의 인력 및 예산 확보 노력으로 2022년 기준 정원은 80명, 예산은 70,776백만원으로 확대됐다. 재외동포재단법 시행령에 따라 외교부, 교육부, 문화체육관광부, 보건복지부, 공보처 등 5개 정부 부처에서 20개의 재외동포 관련 사업이 재외동포재단으로 이관됐다.
역대 이사장으로 10명이 거쳐갔다. 외교부 출신이 가장 많은 5명, 대학교수 출신 2명, 민간연구소 출신 1명, 정치인 출신 1명, 재외동포 출신 1명이었다. 임기는 대부분 3년이었다.
재외동포재단은 재외동포정책 집행을 위해 ‘중장기 전략’을 수립해 시행했다. 중장기 전략은 재외동포재단 운영과 사업추진의 기본 방향이 되었으며, 정부 국정과제와 재외동포사회의 변화 등을 반영하여 보완되었다.
참고로 2022년도 중장기 전략을 보면 ‘재외동포들이 민족적 유대감을 유지하면서 거주국에서 모범적인 구성원이 되도록 지원’이라는 미션과 ‘한민족공동체를 구현하는 플랫폼 기관’이라는 비전 달성을 위해 정체성 함양, 역량 강화, 상생 발전, 사회적 가치 실현 등의 4가지 핵심 가치와 4가지 전략목표 그리고 12개의 전략과제를 설정했다.
재외동포재단은 사업 첫해인 1998년, 정부 부처 이관 사업과 재외동포재단의 자체 발굴 사업을 기획조사연구사업, 교류홍보사업, 교육문화사업의 3개 분야로 구분하여 시행했다. 이때 ‘모국을 빛낸 재외동포 초청’, ‘재외동포 민족교육자 초청’, ‘재외동포 대학생 모국 순례 연수’, ‘한국을 빛낸 재외동포 초청’, ‘해외입양인 모국 방문사업’, 일제강점기와 6.25 등 민족수난기의 피해자와 그 후손 등을 대상으로 한 ‘역사 속의 한국인 초청’ 등 모국과의 연대감을 형성하기 위한 초청사업과 재외동포의 정체성 함양을 위한 ‘재외한글학교 지원’, ‘재외동포 대상 한국문화 공연’ 등의 교육 및 문화지원사업이 시행했다.
이와 함께 재미동포와 흑인 및 히스패닉계 간의 상호 이해와 우호 관계 조성을 목적으로 미국의 흑인 및 히스패닉 지도자를 초청하는 ‘유공외국인 초청 연수’와 재외동포사회의 화합과 교류 증진을 위한 ‘재외동포단체의 다양한 활동 등에 대한 재정 지원’도 시행되었다.
이후에는 재외동포단체인 한인회의 대표가 참가하는 ‘세계한인회장대회’와 국내경제인과 재외동포경제인 참석하여 한민족경제인네트워크 구축과 국내중소기업의 해외진출을 지원하는 ‘세계한상대회’도 개최됐다. 재외동포 예술인 발굴 및 소개를 위한 ‘Korean Festival’, 재외동포의 거주국 내 정치적 위상과 영향력 강화를 위한 ‘재외동포정치력 신장 사업’, 재외동포 차세대경제인 육성을 위한 ‘영비즈니스리더포럼’, 한국과 재외동포사회의 시간적·공간적 차이를 극복하기 위한 on-line ‘코리안넷 구축’ 등의 사업도 추가됐다. 일부 사업은 평가를 통해 확대, 축소 또는 폐지했다.
재외동포재단은 정체성 유지·지원, 역량 강화 네트워크 구축으로 구분해 사업을 시행했다. 정체성 유지·지원은 재외동포의 현지 동화 방지와 한민족으로서의 동질감 유지를, 네트워크 구축은 모국과 재외동포, 재외동포와 재외동포간 인적 교류와 정보 공유 등을, 역량 강화는 거주국에서의 안정 정착과 위상 강화 등을 위한 자조역량 강화가 목적이었다.
각 사업은 재정 지원, 초청, 파견, 대회 개최, 물품 지원 등의 다양한 형태로 시행되었으며, 2022년도 기준 사업내용은 다음 표와 같다.
하지만 재단이라는 성격과 제한된 인력 및 예산으로 인해 어려움도 뒤따랐다. 정무적 환경 변화도 어려움을 가중시켰다.
재외동포재단은 우리 정부가 ‘세계 각국에 거주하고 있는 모든 재외동포와 관련된 업무를 포괄적으로 전담하는 성격’의 동포청 설립 요구에 부응하되 외국 정부와의 외교적 갈등 등을 고려한 정무적 결정 아래 출범했다. 따라서 정무적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변화가 발생 시 그 영향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정부 각 부처 소관 동포 관련 현안에 대한 대응에도 한계가 있었다. 재외동포사회의 주요 현안인 재외동포자녀 병역, 세금, 복수국적 허용 연령 조정, 자유로운 출입국, 국내에서의 자유로운 경제 활동, 의료보험과 국민연금 문제 등은 병무청, 국세청, 법무부, 보건복지부, 고용노동부 등의 소관 업무로서 재외동포재단으로서는 실질적 대응이 불가능했다. 이는 재외동포청 설립로 이어지는 원인이 됐다.
재외동포사회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조직과 예산도 한계였다. 재외동포 연구자들은 재외동포재단의 인력과 예산이 100명, 1,000억원 규모가 되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하지만 실제 인력과 예산은 외부의 기대와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또한 기획재정부의 인력과 예산 심의가 전년도 수치를 기준으로 진행됨에 따라 대폭적인 인력 증원과 예산 증액이 어려웠다.
재외동포재단의 사업대상에 국내체류동포가 포함되지 않은 점도 지적할 만하다. 100여만명으로 추산되는 국내체류동포는 재외동포재단 사업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국내체류동포에게 재외동포재단의 존재 의미는 미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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