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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파워의 어두운 그림자...'한인구조'대상자만 10만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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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7회 작성일 24-10-10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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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파워의 어두운 그림자...'한인구조'대상자만 10만명


권태일 한인구조단장, ‘영사조력법’ 제정에 기여
"처음부터 길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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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일 한인구조단장이 경기도 부천에 위치한 자신의 사무실에서 본지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권태일 한인구조단장이 경기도 부천에 위치한 자신의 사무실에서 본지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과테말라의 한 남성은 아내인 한국인 여성을 시도 때도 없이 폭행을 일삼다 못해 급기야 정신병원에다 감금을 시켰어요. 지난 8월 중순 한 시민단체의 도움으로 남편을 구속하고 이 여성을 구출해 과테말라 수도로 이송한 뒤 한국으로 데리고 오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구출 하루 만에 이국땅에서 쓸쓸하게 숨졌습니다. 단 하루일지라도 편한 마음으로 죽는다는 것이 다소 ‘위안’이 되었을지 모르지만, 한국인으로서 너무나 가슴 아픕니다.”

권태일 한인구조단장이 전한 사연이다. 최근 한국이 K-파워로 전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나라 가운데 하나가 됐지만 10만여 명의 한인들이 해외에서 떠돌고 있다. 이들 대다수가 해외에서 질병을 얻거나 사업 실패, 가정 해체에 따른 생활고로 인해 고국 땅을 밟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2008년 권 단장이 해외선교를 다니다가 이런 사연을 접한 뒤 이들을 국내로 송환, 재활을 돕기 위해 만든 단체가 바로 ‘한인구조단’이다. 2017년 외교부 소속 사단법인으로 정식 등록된 이 단체는 국내 유일의 한인구조 전문 비영리법인으로 10년 동안 30여 국에서 750명이나 구조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시절, “길은 원래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다”라는 루쉰의 말처럼 권 단장이 나서서 10년 넘게 길을 만들고 닦아 왔다. 한인들의 생명을 구하는 일에 너나가 없다는 사실은 불문가지. 그러나 정부에서는 이들을 구조할 법이나 제도가 없었다. 그럼에도 권 단장은 외교부, 법무부, 재외동포재단(재외동포청 전신) 등 가리지 않고 발품을 팔았다. 그러나 모두 생소한 단체라며 시큰둥했다. 한인구조단이 뭘 하는지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던 것. 그러나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다”며 힘을 실어준 사람도 있다. 호주 대사를 지낸 외교부 K 영사국장을 만나서 사업을 설명했더니 즉석에서 직원을 시켜 한인구조단의 역할을 알리는 공문을 세계 각국의 공관에 보내줬다. 한인구조단의 활동이 공문을 통해 전 세계로 퍼져 나간 배경이다. 지금까지 구조단을 이끌어오면서 가장 고마운 분 중의 한 분으로 기억된다고 했다.

권 단장은 1987년 ‘함께하는 사랑밭’이라는 NGO를 설립했다. 당시 150여 명의 회원들에게 이메일로 ‘사랑밭 새벽편지’를 서비스하면서 시작한 것이 현재 회원 200여만 명으로 늘어났다. 새벽을 깨우는 이런 서비스는 한국의 나눔 문화 생태계를 바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현재 NGO 단체인 ‘함께하는 사랑밭’ 등 7개 사단법인과 사회복지법인 2개를 운영하고 있다.

한인구조단이 지난해 1월23일 아시아한인회총연합회와 업무협약식을 체결했다.(사진 왼쪽에서 부터 김교식 사무총장, 박호선  몽골한인회장, 윤희 아시아한인회총연합회장, 권태일 한인구조단 단장, 장은숙 하노이한인회장, 김구환 아총연 부회장)한인구조단이 지난해 1월23일 아시아한인회총연합회와 업무협약식을 체결했다.(사진 왼쪽에서 부터 김교식 사무총장, 박호선  몽골한인회장, 윤희 아시아한인회총연합회장, 권태일 한인구조단 단장, 장은숙 하노이한인회장, 김구환 아총연 부회장)

권 단장이 인터뷰 내내 들려주는 안타까운 사연들은 지금껏 750여명의 한인들을 구조한 수만큼이나 각양각색이다. 요즘에는 알코올이나 마약 중독자도 적지 않다. 이들은 한국으로 이송한뒤 주로 전문시설로 보낸다. 한인구조단의 국내 협력 기관 및 관련 시설은 요양시설과 노숙인 시설, 의료협력 기관, 사회 적응을 위한 교육 시설 등 30여 개 단체와 연계돼 있다. 세계 각국의 한인회를 비롯해 교회 등 100여 개 단체와도 업무협약을 체결, 한인구조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특히 중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각종 사건 사고는 혀를 내두를 정도다. 200만에 이르는 조선족에다 한국에서 넘어간 한인들의 숫자가 수십만 명에 이르면서 이런 안타까운 사연은 차고 넘친다. 천진에서 연 매출 150억 원을 올리던 A 씨의 사례다.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던 어느 날, A씨는 현지 한국인과 중국인이 짜고 사기를 치는 바람에 전 재산을 한꺼번에 날리면서 그 충격에 의해 실명이 돼 버렸다. 구조단이 지인들을 동원해 매월 200만~300만 원의 생활비를 댔다. 하지만 ‘긴 병에 효자 없다’고 오래가지 못했다. 결국 천진 양로원으로 보내졌다.

지방에 살던 조선족이 북경에 올라오면 초창기에는 대다수가 창고보다 못한 지하에서 산다. 몇 개월 살면 머리와 관절이 아프고 곧 온 뼈마디가 쑤신다. 그렇다고 달리 해결책도 없다. 이를 지켜본 권 단장이 아파트 한 채를 얻어 쉼터로 만들어 조선족들이 쉴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을 만들어줬다. 그러나 천진 양로원에서 살고 있는 A 씨가 마음에 걸렸다. 3년 만에 그를 북경의 쉼터로 모셨다. 하찮은 공간이지만 “세상에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며 연신 감사 인사를 하는 A 씨를 잊을 수 없다”고 권 단장은 말했다.

“사실은 A 씨를 곧바로 데리고 오지 못했어요. 3000만 원이 물려 있다는 거예요. 3년간 실랑이를 벌인 끝에 절반 가격에 협상해서 데리고 나와 실명때문에 안마 기술을 가르쳤어요. 지금 부천 소사에 살고 있습니다.”

권 단장이 한인 구조사업을 본격적으로 전개하기까지 대략 10여 년은 정부 당국자는 물론, 현지 한인사회에도 많은 변화를 안겨 주었다. 2008년부터 시작된 한인구조 활동이 외교부는 물론 전 공관에 알려지면서 2019년 제정된 ‘재외국민 보호를 위한 영사 조력법’이 바로 그것이다. 이 법은 재외국민의 생명‧신체 및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국가의 영사조력(領事助力)과 관련한 제반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국민의 안전한 국외 거주ㆍ체류 및 방문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한다.

한인들을 구조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절차를 밟아야 한다. 사업 실패로 인해 가정이 파탄 나면서 문전걸식하는 사람도 있고, 마약과 사기 등에 연루되거나 병원에서 치료비를 내지 못해 꼼짝 못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이들 대다수가 여권도 말소됐고, 비행기 표를 구할 수 없을 정도로 형편이 어렵다. 현지 정부의 도움은 물론, 한국 대사관이나 한인회 등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어렵사리 한국까지 이송했다고 하더라도 이들을 반기는 친인척도 거의 없다. 이렇듯 한 사람을 구조하는데 적지 않은 비용과 시간, 복잡한 절차가 기다린다. 때로는 한 명을 구조하는데 수천만 원이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구조 대상자가 한국에 도착하는 순간, 직원들은 그야말로 눈코뜰새 없이 뛰어 다닌다. 우선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려야 할 의료혜택을 받기 위해서 주민등록증을 만들어야 줘야 한다.병원과 구청을 쫒아 다니면서 행정처리를 해야 한다. 구조된 분이 사망을 하면 장례까지 치뤄줘야 한다. 어느 것 하나 쉬운일이 없다. 

실례로 구조단 관계자가 주민센터를 찾아가 “주민등록증을 만들어야 한다”고 하자 본인이 와야만 가능하다고 했다. 당연한 주문이다. 그러나 식물인간의 경우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한인구조 시스템이 구축됐고 결국, 한인구조단이 “전에 없던 길을 지금까지 하나하나 만들어 왔다”고 권 단장은 설명했다. 구조단의 이런 인도적인 구조 활동이 기초가 되어 현재 세계 각지에서 들어오는 각종 정보가 카톡방이나 SNS 등을 통해 12명의 구조단 직원에게 전송된다.

권태일 단장이 지난 5월16일 중국 해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최규룡씨(사진 왼쪽에서 3번째)를 한인구조단 중국단장으로 위촉했다.권태일 단장이 지난 5월16일 중국 해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최규룡씨(사진 왼쪽에서 3번째)를 한인구조단 중국단장으로 위촉했다.

이날 권 단장에게서 감동적인 사례 하나를 들었다. 과테말라에서 봉제 사업을 하던 L 씨의 이야기다. L 씨는 과테말라에서 공장을 운영했다. 현지 여성과 결혼해 두 자녀를 두었으나 갑자기 공장에 도둑이 들어 전 재산을 날렸다. 공장은 폐업되고 불법체류자가 돼 떠돌다가 결국 폐병을 얻어 죽음 직전으로 몰렸다. 병원에서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구조단의 극적인 도움으로 한국 땅을 밟은 그는 서울의 S 병원에 입원, 3개월 만에 완치판정을 받았다. 수천만 원이 소요된 비용은 한인구조단과 대사관, 후원자 등이 십시일반으로 모아 해결했다.

“L 씨가 과테말라로 넘어가기 전 한국에서 단추공장을 운영했답니다. 당시 자기 아래에서 시다로 일하던 후배가 용인에 공장을 차렸는데, 병원에서 퇴원한 뒤 이 공장으로 들어가 2년간 5000만 원을 벌어 과테말라에 사는 가족에게 돌아갔습니다. 그러고 나서 또다시 2명의 자식을 낳아 현재 4명의 자녀를 두고 있는데, 종종 아이들의 사진을 보내주고 있어요. 참 보람 있는 일입니다.”

지난달 강화도에 소재한 한인구조단 재활센터에 들렀다. 구내식당에서 20여 명이 옹기종기 모여 식사를 하고 있었다. 겉으로 봐서는 젊고 멀쩡하게 보이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이처럼 한인구조단에 구조되어 재활센터에 입소하는 사람들은 수십 년 동안 단 한 번도 한국 땅을 밟아보지 못했던 사람들도 적지 않다. 어떤 경우에는 40년 만에 고국에 돌아와 재활센터에 들어온 사람도 있다고 한다.

“외국인을 만나면 ‘Hello! give me’ 하던 시절, 청운의 꿈을 안고 떠났던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이 떠날 당시 한국은 말 그대로 가난에 찌든 그런 나라였습니다. 허나 지금 어떤가요. 한국의 발전상을 보고 문화적 충격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들에게 석 달 정도 먹여주고, 재워주고, 쉬게 하면서 현금도 50만 원~70만 원을 드렸어요. 이 기간에 운전면허나 중개사 자격증 공부도 시키고 고구마나 감자도 심게 하는 등 사회복귀를 준비시킵니다.”

권 단장은 “재활센터에 근무하는 관리자가 입소자들에게 농사일을 시키면서 ‘돈을 벌면 통장에 입금해 준다’고 했다”며 “그러나 적자가 나서 돈을 못 주는 상황이 되자, 입소자들이 데모하는 일까지 벌어졌다”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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