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문종범의 ‘한민족 글로벌 진출사’ ③...美 명문 3개 대학 학위 취득, 이승만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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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회 작성일 24-11-06 09:58본문
[기고] 문종범의 ‘한민족 글로벌 진출사’ ③...美 명문 3개 대학 학위 취득, 이승만 박사
경영학박사, 전 건국대 교수, 베트남 K-Food 사장
- 재외동포신문
- 입력 2024.11.05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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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대구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미국 보스턴대학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고 한국으로 돌아와 서울대학교에서 경영학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 후 10여 년간 한국에서 대학교수로 재직하다 IT기업에서 싱가포르, 베트남 법인을 설립했고, 한국 딸기 품종을 미국으로 가져가 최초로 미국농림부에 종자보호권을 등록하며 4년간 캘리포니아에서 직접 딸기 농사를 지었다. 2024년 10월부터 1만여 한국업체가 진출해 있는 기회의 땅 베트남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현대판 노마드(Nomad, 유목민)로 세계를 다니며 직접 접하고 느낀 한민족 글로벌 진출 이야기를 재외동포신문에 연재한다.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은 대통령이 아닌 박사로 더 많이 불리었다.
세종대왕의 맏형인 양녕대군의 16대손으로 조지워싱턴 대학교에서 학사, 하버드 대학교에서 석사,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그는 바로 이승만 전)대통령이다. 어린 시절 박사로 불리는 이승만 대통령이 과연 무슨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는지 궁금해 아버지께 여쭤보니 철학박사라고 하셨다. 지금 생각하니 Ph.D.(Philosophy of Doctor)를 철학 박사로 해석했나 보다.
1875년 생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이기도 한 그는 1899년 1월 9일 발생한 박영효 일파의 대한제국 고종 폐위 음모에 가담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5년 7개월간 한성 감옥에 투옥됐다. 기록영상을 보면 이승만 박사가 얼굴을 실룩거리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투옥 당시 고문을 당해 안면 경련이 생겼다고 한다. 그는 옥중에서 성경책을 통해 영어공부를 했고 혼자서 한영사전을 정리했다.
대한제국 말기 특별 사면된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1905년 2월에 미국 조지워싱턴 대학교에서 정치학 전공으로 1907년 6월 학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리고 같은 해 9월 하버드 대학교 사학 석사과정에 입학해 1년 만에 석사 과정을 수료하고 1908년 9월 프린스턴 대학교 박사과정에 입학을 하게 된다. 그리고 2년 후인 1910년 7월 18일에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35세의 나이에 한국인 최초로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박사학위 논문의 제목은 ‘미국의 영향을 받은 영세중립론(Neutrality as influenced by the United States)’이었다. 당시 그에게 직접 정치학 박사학위를 수여한 프린스턴 대학교의 총장은 우리가 ‘민족자결주의’로 알고 있는 제28대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이었다. 하지만 그의 박사학위 논문은 제본 비용 80달러가 없어 2년 후인 1912년에야 출간됐다.
세계적인 명문 하버드 대학교와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채 3년이 걸리지 않아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한 것은 아마 유래를 찾기 힘들 것이다. 또한 미국의 3개 명문대학교에서 학사, 석사, 박사를 5년 남짓한 기간에 취득했다는 것은 오늘날에도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이러한 일들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조지워싱턴대학교에서 4학기를 마친 1906년 겨울, 이승만은 자신의 옛 은사 서재필(徐載弼)박사에게 하버드대 대학원 진학 의사를 밝히고 조언을 구하는 편지를 보냈다. 서재필 박사 또한 미국에서 한인 최초로 세균학 전공으로 의무박사(미국의 전문박사 학위 중 하나, Doctor of Medicine; MD)가 된 인물로서 1890년 6월 10일 한국인 최초로 미국 시민권을 받았다. 서재필 박사는 이승만의 편지에 하버드대에 진학하려는 꿈을 칭찬하고 역사학을 전공할 것과 1년 이내에 석사과정을 마치고 귀국할 것을 충고하는 답장을 보냈다.
이승만은 하버드대학교 인문대학원 원장 앞으로 보낸 입학지원서에서 자기는 다년간 동양적 학문에 공업을 쌓은 인물이며, 한국에서 할 일이 많고, 자신의 귀국을 고대하는 사람들이 많기에 2년 이내에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이러한 입학지원서를 받은 하버드 대학교 측은 얼마나 황당했을까? 지금이나 그때나 통상 4년 이상 걸리는 박사학위를 2년 내에 취득한 선례가 없기에 하버드 대학교 측은 박사과정에 입학하되 석사과정부터 밟으라는 회신을 한다. 이승만은 1907년 가을보스턴시의 찰스강(Charles River) 북쪽에 위치한 케임브리지(Cambridge)시에 있는 하버드 대학교에 입학했다. 필자는 유학시절 이승만 박사가 하버드 대학교 재학시절 거처했던 주택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 집 앞에는 이승만 박사가 심은 것이라고 하는 무궁화가 있었던 걸로 알려져 있는데, 진위여부는 확인되지 않은 것 같다.
하버드대에서 1년 동안 계획과는 달리 고전을 했지만, 그는 2년 안에 박사학위를 받겠다는 계획을 포기하지 않았다. 서울에서 사귀었던 선교사 홀(E F Hall)을 만나 그와 함께 프린스턴 대학교를 방문해 대학원장 웨스트(A F West)박사와 면접을 했다. 그리고 웨스트 박사에게 2년 안에 박사학위를 끝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이를 고려하지 않으면 뉴욕의 컬럼비아 대에 입학하겠다고 으름장까지 놓았다. 어찌 보면 무모할 정도로 용감하고 대단한 배짱이었다. 하지만 이게 통하여 프린스턴 대학교는 2년 안에 박사과정을 끝내 주겠다는 보장 하에 이승만을 입학시켰을 뿐만 아니라, 신학교 학사에서 무료로 기숙까지 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승만 박사의 이야기를 접하며 만리타국에서 자신의 목표를 위해 길을 찾고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어서라도 그 목표를 달성하는 한민족의 강인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러한 강인함과 도전정신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세계 속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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