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환칼럼] 월드코리안신문 창간 15주년을 지내며 > 자유 게시판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자유 게시판

[이종환칼럼] 월드코리안신문 창간 15주년을 지내며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회 작성일 25-06-19 09:59

본문

아시아총연 총회 차 캄보디아에 갔다가 정신이 드는 얘기를 들었다. “창간일을 보니 어제가 15주년 생일이네요.” 신문을 들고 간 나조차 미처 잊고 있던 얘기였다.

전날 아시아총연 총회 및 아시아한상대회 참여한다고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갔다. 오후 6시 50분 인천발 대한항공 편인데, 프놈펜 도착은 이날 밤늦어서였다.

입국 수속을 하고, 서울서 같은 비행기를 탄 아시아총연 총회 참가자들과 호텔에 도착하니 자정이 가까웠다. 그리고 이튿날 호텔 로비 커피숍에 신문을 가져다 놓았더니 어떤 분이 신문을 보고 알려줬던 것이다.

이 얘기를 들으며, 지난 15년간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쳤다.

월드코리안신문이 창간호를 발행한 것은 2010년 6월 10일이다. 지난 6월 10일로 만 15년을 지내고, 이제 16년 차에 접어들었다.

창간 기념식을 가진 것은 그로부터 4개월여 뒤였다. 마침 한식진흥원이 세계한식협의체 행사를 해서 여기에 참여하러 온 연변 한식협의체의 동포 여성분들이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우리 신문 창간 기념식을 자기 일처럼 도와준 기억이 난다.

그 후 15년을 어떻게 달려왔는지 돌이켜 보자니, 신문을 뒤적여 보지 않고는 연도까지 헛갈릴 정도다.

지난 15년을 돌이키면서, 하나 확실한 것은 신문을 빼먹지 않고 만들었다는 것이다. 당초 타블로이드판 24면을 월 2회 발행하던 것을 매회 36면으로 늘려 수년간 발행한 기억이 있다. 32면 때는 월드코리안 일본판과 중국판을 번갈아 가며, 18면씩 사이에 넣어서 발행했다. 이 신문들을 일본에 보내고, 중국에서 PDF파일을 보내 현지에서 1만부 인쇄를 했다. 일본판은 재일민단이 협력해줬고, 중국판은 재중국한국인회 기관지로 만들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재일민단도 바뀌고 어려움을 겪는 일이 있었다. 중국한국인회도 사드와 코로나 등을 겪은 후 예전과 같지 않다. 이 때문에 일본판과 중국판은 발행하고 있지 않다.

심포지엄도 많이 개최했다. 1년에 국회에서 두 차례 정도는 개최해 왔는데, 이 심포지엄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해외에서 한국을 방문하는 한인리더들을 초빙해 월드코리안포럼도 수시로 개최했다. 이를 위해 올림픽파크텔에 장소도 마련해 월 서너 차례 포럼을 연 적도 있었다. 해외 리더들을 강사로 초빙해 그들의 삶과 사업을 조명하는 강연이 대부분이었다. 해외에 주재한 외교관이나 국내 강사를 초빙할 때도 있었다.

올해도 월드코리안포럼을 진행했으나, 이 또한 열기나 관심이 예전만 못한 것 같다. 그래서 수시 개최도 망설여진다.

해외에 한류 바람이 불면서 이를 지원하자는 취지에서 국내 문화계 인사들을 중심으로 ‘K-컬쳐 서포터즈’를 조직해 활동하기도 했다. 쇼케이스 음악회도 열고, 장작불 도자기 가마터가 있는 이천도자센터로 가서, 음악회도 열면서 가마 속의 장작불로 고구마를 구워 먹기도 했다. 지금도 K-컬쳐 서포터즈는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나 활력은 떨어진 듯하다.

국내 대학에 진학하는 재외동포 자녀들을 서로 네트워크로 묶어주자는 취지에서 만든 월드코리안장학회가 올해를 포함해 2년째 중단상태다.

처음에는 20~30명한테 장학금을 주다가 만주독립운동사적지 탐방으로 바꿔서 몇 해를 진행했다. 5박 6일간 심양-집안-백두산-연변-길림을 거치는 여정으로, 경학사와 신흥무관학교도 가고, 윤동주 생가도 방문했다.

장학생들은 아무 유적도 남아 있지 않은 경학사나 신흥무관학교를 가면 무덤덤하다고, 집안의 두만강가에 발을 담그거나 백두산 천지에 올라가면 환호를 했다. 다음에 잘 돼 달라고 백두산 천지에서 손을 모으는 장면들도 많이 봤다.

월드코리안장학회를 운영하면서 해외동포 지도자들에게 폐도 많이 끼쳤다. 그들로부터 받은 장학금으로 만주지역 탐방 경비를 댔기 때문이다. 왕복 항공료부터 현지에서의 숙소와 전세버스 경비까지 충당했으니, 이 자리를 빌려 장학금을 내준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이제 16년째를 맞아 어떻게 가야 할지 고민을 하고 있다. SNS의 등장으로 언론환경도 많이 변했다. 해외에서 단체장이나 회장 명함을 들고 있지 않은 사람도 찾기 어렵지만, 교수 명함이나 기자 명함을 들고 있는 사람도 무수히 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굽은 나무가 고향 땅을 지킨다고, 누군가는 해외 소식을 모아서 전해야 하고, 또 바른 목소리도 내야 하지 않나 싶다. 월드코리안신문이 해외 한인사회의 발전에 기여하는 일이 그 일이 아닌가 싶다.

독자 제현의 지속적인 성원을 바란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아시아한인회총연합회Address : seocho Hyundae Tower 803, 375, Gangnam-daero, Seocho-gu, Seoul, 06620, Korea
Phone : +82. 70. 8822- 0338, E-mail : achong.asia@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