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신이 인간을 지구에 보낸 이유는?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회 작성일 25-06-27 13:20본문
[현장]신이 인간을 지구에 보낸 이유는?
나의 마지막 카드는 ‘자선사업가 고석화’
금융 인생 40년은 ‘보람’과 ‘영광의 길’
- 박철의 기자
- 입력 2025.06.23 09:23
- 수정 2025.06.26 15:35
- 댓글 0
![고석화 월드옥타 명예회장이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열린 월드옥타 경제인대회에서 강연하고 있다.[박철의 기자]](https://cdn.dongponews.net/news/photo/202506/53107_205439_2218.jpg)
“God sent us here for picnic: 신은 우리를 지구에 보낼때 소풍으로 보냈다.“
고석화 월드옥타 명예회장이 지난 6월20일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개최된 월드옥타 경제인대회에서 월드옥타 차세대 및 회원 50여명 앞에서 소풍 경영자가 되라고 주문했다.
그는 ”우리는 평생 돈을 쫓아가면서 아등바등 돈을 벌기 위해 살아가지만, 결국은 나이가 들어 병이 들게 되면 그동안 벌었던 대부분의 돈을 치료하다가 인생을 마친다“며 ”우리는 신의 뜻처럼 친구들과 함께 도시락을 싸서 소풍을 떠나듯이 매일매일 즐겁고 행복하게 살수 있는 길을 만들어 가라“고 당부했다. 돈을 인생의 목적으로 생각하면 불행해진다는 그의 설명이다.
6.22일 월드옥타 공식 일정이 끝나고 그는 6박7일 일정으로 월드옥타 회원들과 튀르키에 소풍을 떠난다고 했다. 가장 깊은 곳의 또 다른 자신을 찾기 위한 떠남이 아닐까.
고 명예회장은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1971년 연합철강 주재원으로 미국 땅을 밟았다. 하지만 그의 가슴엔 공부를 하고 싶은 욕심이 더 강했다. 훗날 정치를 하고 싶은 욕망 때문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가진 것 없었지만 공부도 해야 하고 가장으로서의 책임도 져야 하고...
결국은 청소부 노동자로서의 고된 삶을 1년 반 동안 이어가면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던 터에 1975년 Pacific Steel Corporation/Koss International Corporation을 설립, 본격적인 경영자의 길로 들어섰다. 신은 그의 손에 경영자의 열쇠를 쥐어 준 것이다.
마침 건설경기 호황에 따른 철강제품이 품귀현상을 빚을 만큼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그야말로 큰 돈을 손에 쥐게 된다. 그는 이를 종잣돈으로 삼아 1986년 주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경영난에 몰린 윌셔은행을 인수했다. 하지만 또 다른 난관에 봉착했다. 경영진의 스캔들때문이었다. 하지만 불굴의 리더십과 뚝심으로 회사를 정상화 시키면서 마침내 1998년 윌셔은행을 나스닥에 상장시키는 기염을 토했다. 그의 도전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은행업 진출 30년 만인 2016년 美 한인은행인 BBCN과 합병을 통해 ‘Bank of Hope’라는 통합은행을 출범시키는 승부수를 던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미국의 한국계 은행은 대략 15개 정도. 이들 모두를 합치면 뱅크오브호프 정도라는 현지 업계의 분석이다.
”뱅크오브호프는 15년 가량 소규모은행들과 M&A를 통해 몸집을 키워왔습니다. 치열한 금융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자구책이었죠. 이런 결과 현재 뱅크오브호프는 미국내 5500여개의 주류은행 가운데 100대 은행에 진입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뒤돌아보면 나의 금융 인생 40년은 보람과 영광의 길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중소기업들의 금융의 젖줄 역할을 다해왔다는 점에서도 자부심도 느끼고 있습니다.“
그는 초대 뱅크오브호프 회장을 지낸 뒤 최근에는 일선에서 물러났다. 뱅크오브호프와의 끈은 명예회장이 전부다. 그래서 은행에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출근, 경영자나 직원들을 만나
”뱅크오브호프는 이제 M&A 등 몸집 불리기보다 금융패러다임에 맞는 금융상품 개발 및 서비스에 주력하라“는 정도가 전부라고 했다. 요즘에는 5년 전 잠시 배우다가 코비드로 멈춘 기타를 다시 잡았다고 근황을 전했다.
![22일 이스탄불 소피아 사원 앞 광장에서 이웅길 월드옥타 고문과 고석화 명예회장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장면.[박철의 기자]](https://cdn.dongponews.net/news/photo/202506/53107_205440_2258.jpg)
이날 강연을 통해 고 명예 회장은 인생 2막은 성공한 사업가나 회장의 직책이 아닌, ‘자선사업가 고석화’라는 카드(명함)를 남기고 싶다는 소망을 피력했다. 그의 이런 소망은 어린 시절, ”어머님께서 욕심내지 말고, 늘 남과 함께 더불어 살라는 당부 때문이었다“고 고백했다.
이런 이유로 2004년 500만 달러를 출연해 고선(Koh Charitable Foundation/高善)재단을 설립했다. 이어 2007년 그는 모교인 연세대를 찾아가 100만달러의 장학금을 내 놓았다. 원금을 건드리 않고 현재까지 매년 8명~10명에게 장학금이 지급되고 있다. 수혜자는 공부는 잘하는데 등록금이 부족한 학생들이다. 현재 재단의 자산은 1000만달러가 넘는다.
이렇게 시작한 자선사업은 매년 미국을 넘어 전 세계 20여개가 넘는 봉사단체까지 수혜의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는 그의 설명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