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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수교60주년]재일동포가 남긴 유산⑤...오사카서 다시 만난 이희건의 기업가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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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회 작성일 25-08-13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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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수교60주년]재일동포가 남긴 유산⑤...오사카서 다시 만난 이희건의 기업가정신


“신한은행은 재일동포들의 ‘피’와 ‘땀’의 결정체”
′70년 오사카EXPO 한국관 건립에도 50만 달러 기부
이희건 재단, ‘2025 오사카박람회’ 한국관에 3억 기부
700만 재외동포는 창업주의 기업가 정신 계승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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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이희건 신한금융그룹 명예회장故 이희건 신한금융그룹 명예회장

일본은 오사카만국박람회의 옛 영광을 되찾겠다는 야심찬 포부에서 2018년 ‘2025 오사카·간사이 세계박람회’(이하 오사카박람회)유치 신청을 냈다. 힘겹게 러시아와 아제르바이젠을 따돌리고 오사카박람회 유치에 성공, 지난 4월13일 6개월의 대장정에 돌입했다.

1970년 동아시아 최초의 오사카만국박람회에 이어 55년 만에 같은 장소에서 두 번째 박람회가 열리게 된 것. 세계박람회는 크게 등록박람회와 인정박람회로 구분된다. 이들 박람회 개최 기간은 각각 최장 6개월과 3개월로 나뉜다. 오사카박람회는 모두 등록박람회다. 한국의 대전엑스포(1993)와 여수엑스포(2012)는 모두 인정박람회다.

지난 6월30일 기준, 오사카박람회장 방문객은 1000만 명을 돌파했다. 총 2800만명의 관람객 유치를 목표로 하고 있어 아직 흥행 여부는 가늠할 수 없다. 다만 ′70년 만국박람회 관람객은 무려 6400여만 명. 일본 전체 인구의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박람회장을 찾아 대표적 흥행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당시 참가국은 고작 78개국이었지만 이번에는 159개국이 참가했다.

이번 박람회장 내 한국관 관람객은 지난 6월27일 기준 140만 명을 돌파했다. 프랑스관과 함께 한국관이 인기관 중의 하나로 알려지고 있다. 무엇보다 한국관을 상징하는 건물 정면의 폭 27m, 높이 10m의 대형 미디어 파사드 스크린에서 물결치는 한복의 곡선과 바람 속의 소나무, 꽃이 피어나는 장면은 압권이라는 평가다.

지난 4월 13일 개막한 2025오사카박람회장 내 한국관 전경. 지난 4월 13일 개막한 2025오사카박람회장 내 한국관 전경. 

한국관 전시실은 3개의 공간으로 구성돼 있는데, 마지막 공간에 ‘재일동포 지원 기념 월’이 전시돼 있다. 재일동포 역사와 활약상이 간단하게 정리돼 있다. 모든 내용의 중심에는 오사카의 한인 거상(巨商) 이희건 전 신한금융그룹 명예회장이 자리하고 있다. 코트라는 지난 4월 2025 오사카 세계박람회장 내 한국관 건립에 (사)이희건 한일문화교류재단에서 3억원을 기부했다고 밝힌 바 있다. 1970년 오사카만국박람회 당시 ‘재일한국인 만국박람회 후원회’를 주도하며 한국관 건립을 지원했던 이희건 명예회장의 뜻을 기려 조성했다.

한일문화교류재단에 따르면 “이번 기부금은 한국관 개관과 함께 한일 양국의 우호협력과 민간교류 확대의 상징으로 의미가 깊다”고 밝혔다. 이희건 명예회장과 박람회의 인연은 오사카만국박람회 개최 1년 전인 196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오사카만국박람회 한국관 건립비용은 100만 달러.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250달러 내외인 점을 감안할 때, 한국 정부 입장에서 적잖은 부담이 됐다. 이같은 소식은 재일동포들에게도 전달됐다. 이희건 명예회장을 비롯한 재일동포들은 “만국박람회를 통해 한국을 세계에 알려야 한다”며 ‘재일한국인 만국박람회 후원회’를 결성, 70만 달러를 모금했다.

이 가운데 한국관 건립을 위해 50만 달러를 기부하고 나머지 20만 달러는 박람회 참관 티켓을 구매해 재일동포들에게 나눠줬다. 재일동포들의 이런 노력으로 당시 한국관에는 총 625만명의 관람객이 방문, 외국 국가관 가운데 미국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이 회장은 일제 강점기 시대이던 1917년 경북 경산군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열다섯 살이던 1932년 현해탄을 건너가 오사카 무허가 암시장인 쓰루하시(鶴橋)시장에서 자전거 타이어 장사를 하면서 살았다. 그러던 중 1945년 일본이 연합군에 항복하자 쓰루하시 시장은 조선인은 물론 중국인과 일본인들이 뒤섞여 생존을 위한 혈투가 계속됐다.

급기야 미 연합사령부는 1946년 8월 쓰루하시 시장을 폐쇄하기에 이른다. 이에 이 명예회장이 미군사령부를 찾아가 시장이 재개되도록 교섭을 주도한 끝에 이듬해인 1947년 공식 시장으로서 인가를 받아냈다. 이를 발판으로 이 명예회장은 시장 상인들의 조직인 ‘쓰루하시 상점 연맹’을 결성한 뒤 초대 회장에 올랐다.

하지만 오사카는 물론 일본 전역에서 조선인에 대한 금융 차별은 여전했다. 이를 눈여겨 본 이 명예회장은 재일동포들에 대한 금융 차별 해소와 경제적 자립을 목표로 1955년 재일동포 상공인들을 모아 신용조합인 ‘오사카흥은(大阪興銀)’ 설립을 주도한다.

이듬해인 1956년 오사카흥은 제2대 이사장에 취임하면서 금융인으로 첫 발을 내디딘 그는 탁월한 경영 능력을 발휘, 1968년 신사옥을 건립하는 한편, 총 예금고 100억엔을 달성하는 등 비약적인 성장을 주도했다. 70년대 들어 이 명예회장은 한국으로 눈을 돌린다.

1974년 ‘재일한국인 본국 투자협회’를 설립한 뒤 구로공단(현 구로디지털단지) 조성을 박정희 대통령에게 강력하게 제안했다. 우여곡절 끝에 1975년 첫 삽을 뜬 구로공단은 1983년까지 3단계에 걸쳐 완성된다. 이 과정에서 재일동포 기업 17개사가 구로공단에 둥지를 틀면서 재일동포들의 모국 투자에 대한 물꼬를 텄다.

이 명예회장은 “구로 공단에 투자한 재일동포 기업이 성공하려면 금융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며 한국 정부를 끈질기게 설득, 결국 1982년 7월7일 현재 신한금융그룹의 모태가 된 민족은행 신한은행이 설립된다.

“신한은행은 많은 동포 기업인들이 이룩한 피와 땀의 결정체이며,애국충정의 승화입니다. 동시에 조국개발에 대한 동포들의 참여 의지가 결집된 것입니다. 이제부터 신한은행을 조국 대한민국의 경제 번영과 더불어 성장시켜 나가겠습니다.”(1982년 7월7일 신한 창립주주회의, 이민호의 ‘자이니치 리더들’ 中)

현재 신한금융그룹은 KB금융그룹과 매년 선두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곤 한다. 현재 5000여명의 재일동포들이 신한은행의 지분 17%가량을 보유한 최대 주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런 이유로 재일동포는 물론, 재외동포사회에 대한 신한은행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1982년 재일동포 주주 314명이 주축이 돼 설립된 신한은행 본점 전경1982년 재일동포 주주 314명이 주축이 돼 설립된 신한은행 본점 전경

신한은행의 한 관계자는  “신한은행은 1년에 3억~4억원 가량을 이희건 재단에 기부, 선양사업을 하고 있다”며 “재일동포에 대한 사회적 책임 활동은 현지의 SBJ가 판단해서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7월10일 오사카 코리아타운을 안내하던 오사카한인회 A씨도 “국내외를 막론하고 이희건 명예 회장의 남다른 조국애와 기업가 정신은 결코 폄하되어서는 안된다”며 “신한은행의 사회적 책임 활동이 재일동포사회에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소감을 피력했다.

공동기획 : 재외동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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