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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수교60주년] 재일동포가 남긴 유산⑥...김희수 전 중앙대 이사장의 교육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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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8회 작성일 25-08-20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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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수교60주년] 재일동포가 남긴 유산⑥...김희수 전 중앙대 이사장의 교육철학


중앙대 매각 대금 1250억 모조리 수림문화재단에 기부
노블레스 오블리쥬의 전형...한일 양국 인재 양성에 앞장
“사람을 남기는 것이 최고의 인생”이라는 철학 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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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수 전 중앙대 이사장김희수 전 중앙대 이사장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으로 건너가 돈을 번 뒤 모국의 인재 양성을 위해 앞장선 인물들이 적지 않다. 순천 청암대, 진주 교육대, 순천 효천고, 제주여고 등은 공히 재일동포들이 남긴 대표적인 교육 분야 유산이다.

이 가운데 1987년 중앙대학을 인수, 21년간 대학을 경영하다가 2007년 두산그룹에 넘기면서 받은 1250억원을 고스란히 서울의 수림문화재단과 수림재단에 기부한 김희수 전 중앙대 이사장은 단연 으뜸으로 꼽힌다. 당시 그의 자녀 셋에게 단 한 푼도 남기지 않으면서 또 한번 세상을 놀라게 했다. 중앙대 인수 이듬해인 1988년 금정학원을 설립, 한일 인재양성 및 문화교류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

김희수 전 이사장은 당시 “재산을 물려주는 것은 인생의 하(下)이며, 사업을 물려주는 것은 인생의 중(中)이고, 사람을 남기는 것이 최고의 인생'”라는 명언을 남겼다. 생전 단벌 양복을 고집하고 지하철을 즐겨 타는 등 검소한 생활을 하는 등 우리에게 남긴 울림이 적지 않다.

2012년 영면에 들어간 김희수 전 이사장의 업적을 재조명하기 위해 2018년 금정학원 설립 30주년을 맞아 도쿄 수림일본어학교에서 심포지움을 개최했다. 당시 나가노신이치로((永野 愼一郞) 전 동아시아 정경아카데미 대표와 이경규 동의대 교수, 임영언 전남대 교수가 발표한 내용을 요약 정리한다. <편집자 주>

김희수의 철학과 인생관(나가노 신이치로 전 동아시아 정경아카데미 대표)

나가노 신이치로 대표나가노 신이치로 대표

김희수는 1924년 경남 창원군 진동면에서 태어나 할아버지 밑에서 한학을 배웠다. 그러나 진동공립보통학교 입학 후 일본식 교육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보통학교 4학년 때 만난 한국인 교사는 김희수에게 한국어와 한국의 역사를 가르치며 지혜와 용기를 준다.

1938년 보통학교를 졸업한 김희수는 부친을 찾아 일본 도쿄로 건너간다. 당시 아버지로부터 정직과 신용의 중요성을 배우는 한편, 우유배달과 신문배달을 하는 등 갖은 고생을 하면서 도쿄 전기학교를 무사히 마쳤다. 이후 도쿄 도심 유라쿠초 역전에 양품점을 개점하면서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도교 전기대학에 입학해 주경야독으로 대학을 졸업했다.

이후 형과 후타바어탐지기 사업에 이어 철강회사를 설립·운영하다 자금조달의 어려움으로 이를 매각, 4000만엔의 종잣돈으로 부동산임대업에 뛰어들었다. 도쿄 긴자에 임대 빌딩 제1호를 건축한 뒤 20년 만에 13개, 25년 만에 23개 빌딩을 소유하면서 5개의 계열회사를 둔 가나이 그룹을 형성하게 된다.

이어 1988년 도쿄에 수림외어전문학교를 설립하고, 1999년에는 일한 통역번역학과 ,일중 통역번역학과, 일본어학과를 개설했으며 2001년에는 수림일본어학교를 설립했다. 이와함께 1987년 중앙대학교의 부채 700억원을 갚아주고 경영권을 인수한 다음 21년간 대학 발전에 진력하다가 2007년 두산그룹에 경영권을 넘겼다.

동교 김희수 선생의 삶에서 배우다(이경규 동의대학교 교수)

이경규 교수이경규 교수

일제 강점기 시대, 우리 민족에게 가난은 마치 운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재일동포들의 삶은 말 그대로 고난과 눈물, 처절한 삶으로 점철된 한(恨)의 역사다. 김희수 선생의 삶은 배우지 못한 한, 배고픔을 참아내며 살아야 했던 가난의 한, 나라 잃은 설움을 안고 살아야 했던 망국의 한에서 시작됐다.

이런 한을 딛고 재일동포 기업가 중에는 조국의 어려운 경제 현실을 생각하여 조국에 투자하고 기부하는 기업가가 많이 있다. 그러나 김희수 선생을 제외하고는 교육 사업에 투자하는 기업가는 거의 없었다. 김희수 선생은 교육 사업에 대해 투자가 아니라 사회에 대한 기부라고 생각했다.

1987년 경영난에 봉착한 중앙대학교 인수를 선뜻 결정한 것도, 그리고 조국의 문화예술진흥 발전을 위해 수림문화재단을 설립한 것도 교육에 대한 김희수 선생의 염원에서 비롯됐다. 부와 권력, 명성은 사회에 대한 책임과 함께 완성되듯, 김희수 선생의 삶은 사회지도층이 사회에 대한 책무를 다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쥬의 삶을 실천한 가장 모범적인 사례가 될 것이다.

김희수 선생은 그의 좌우명인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를 몸소 실천했다. 그는 돈을 남기고 떠난 자리는 다툼과 욕망으로 존재하지만, 올바른 사람을 남기면 그가 떠난 자리에 사랑과 평화가 충만할 것이라는 그의 평소 말처럼 살았다.

그는 진정으로 공수래공수거의 삶을 실천하고자 했기에 사람 외에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으려고 고심한 흔적만 남기고 홀연히 떠났다.

김희수 선생의 경영전략과 기업가정신(임영언 한남대 교수)

임영언 교수임영언 교수

김희수 선생의 경영철학은 ‘배워야 산다’라는 조부모의 가르침과 함께 정직과 신용을 무기로 일본인의 차별에 대한 사업적 복수의 수단으로 삼았다. 이를 위해 끊임없는 도전과 창업정신, 그리고 글로벌 시대의 혁신적 마인드를 겸비하고 ‘절약, 내실, 합리, 신용’을 모토로 기업을 일구었다.

1947년 해방 전 후 물자가 워낙 부족했던 시절 금정양품을 창업한 것도 사업가로서의 탁월한 식견력과 시대의 흐름을 간파하는 사업가로서의 기질도 엿보이는 대목이다.

아울러 “돈만 보고 사업을 하면 모두 불행해질 수 있지만 모두의 행복을 위해 일하다 보면 돈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내 이익보다 고객의 이익을 먼저 생각한다”라는 경영철학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도 앞장서왔다.

특히 김희수 선생이 일으킨 금정기업은 부동산서비스업에서도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원칙과 땅이나 건물을 되팔아 이윤을 남기는 일을 철저히 배제하는 경영철학을 고수했다. 특히 김희수 선생은 한국이나 일본 어느 쪽에 치우치기보다는 한일양국에서 확고한 경영철학과 기업가정신을 바탕으로 일본에서 일본적 사업성공과 모국에서 인재양성이라는 교육 사업을 마지막까지 몸소 실천했다.

그가 소유했던 생전의 빌딩이나 대학에서의 흔적은 거의 사라지고 있지만 그의 정신적 울림은 후손의 가슴에 영원히 새겨져 있다.

공동기획 : 재외동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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