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과 달을 넘나든 NASA 출신의 ‘김봉전 한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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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2회 작성일 25-10-20 11:12본문
별과 달을 넘나든 NASA 출신의 ‘김봉전 한인회장’
美 우주왕복선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한, 우주항공공학 박사
마틴 마리에타(현 록히드마틴)에서 ICBM 핵심 설계자로도 일해
美서 쌓은 경험 바탕, 1990년대 무궁화위성 발사에도 기여
“누가 우주를 먼저 장악하느냐가 국가의 운명 결정지어”
콜로라도서 한인사회에 봉사하며 ‘제2의 인생’
과학인재 육성 위한 장학사업·멘토링도...“고국을 위해 일하고 싶다”
- 황복희 기자
- 입력 2025.10.17 16:38
- 수정 2025.10.20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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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A에서 경험을 쌓은 흔치않은 이력의 김봉전 콜로라도주 한인회장이 지난 10월1일 세계한인회장 대회가 열리고 있는 서울 워커힐호텔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는 모습. [황복희 기자] 현지 교민사회를 리드하는 한인회장 가운데 우주항공공학 박사로서 NASA(미항공우주국)의 우주왕복선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설계 책임자로 일하는 등 흔치않은 이력을 보유한 사람이 있다. 40년 경력의 재미 한인 우주로켓 과학기술자다. 지난 10월1일 세계한인회장대회가 열린 서울 워커힐호텔 행사장에서 만난 김봉전 미국 콜로라도주 한인회장(제31대)의 이력을 소개받는 순간, 귀가 솔깃해 현장에서 바로 인터뷰 요청을 했다.
커피숍에서 기자와 마주한 김 박사는 서울대 공대를 졸업하고 1976년 미국으로 건너가 우주항공학을 공부한뒤 해당 분야에서 쌓은 화려한 이력을 줄줄 이어갔다. 우주항공 및 전략무기 분야 해박한 지식에 비해 한인회장을 맡은지는 얼마되지 않아 한인사회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자연히 인터뷰는 그의 전문 분야를 중심으로 진행됐다. 인터뷰는 지난 15일 여의도에서도 이어져 2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NASA와 함께한 과학자의 길
서울대 공대(68학번)를 졸업하고 ROTC 장교로 복무한 뒤 현대자동차에서 첫 국산차 포니 개발에 참여했던 김봉전 박사는 1976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마케트대학 기계공학 석사를 거쳐 퍼듀대학교에서 우주항공학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1982년 NASA의 주요 계약사인 락웰 인터내셔널(Rockwell International)에 입사, 우주왕복선 ‘콜럼비아’의 설계 및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NASA는 1958년 미국이 세계 우주패권 장악을 위해 설립한 행정부로, 부속 우주항공연구실과 실험실 등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초거대 우주 프로젝트는 민간 방산업체(록히드마틴, 보잉 등)에서 총괄개발권 계약을 통해 총괄체계 개발, 설계, 제작, 발사, 우주 운용 등을 책임지며 최고의 우주기술자를 발굴해 10여만 명 이상이 연구개발에 종사합니다. 지금 일론 머스크가 하는 건 그 당시 기술의 일부일 뿐입니다.”
이후 그는 덴버의 마틴 마리에타(Martin Marietta, 현 록히드마틴)로 자리를 옮겨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피스키퍼(Peacekeeper)’ 프로젝트의 핵심 설계자로 참여했다. 피스키퍼 미사일은 10개의 핵탄두를 개별 유도할 수 있는 초정밀 무기였다.
“탄두 10개를 개별 목표에 정밀하게 투하하는 기술이었습니다. 당시 기술로도 정확도는 30m 이내였어요. 4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정밀도를 넘는 시스템은 거의 없습니다.”
김 박사는 미국의 첨단기술 현장에서 쌓은 경험을 토대로 1990년대 중반 한국의 무궁화위성 1·2호 발사 감리 책임자로 참여하며 모국의 위성개발에도 일익을 담당했다. 그는 “당시 위성 통신망 구축은 통일 이후를 내다본 훌륭한 전략이었다”면서, “남북한을 포함한 동북아 전체를 연결할 수 있는 기반이었다”고 회고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한화의 로켓엔진 개발 자문을 맡기도 한 그는 한국의 기술력이 “이미 미국·러시아 다음 수준”에 근접해 있다고 평가했다.
“한국은 인력이 뛰어나요. 다만 개념과 방향성이 부족할 뿐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프롬 스크래치(From Scratch)’ 개발 방식은 비용이 너무 큽니다. 이미 확보된 기술을 응용하고, 국제 협력을 유연하게 활용해야 합니다.”
김 박사는 인터뷰 내내 “우주는 새로운 전장의 중심”이라고 강조했다. “모든 전쟁의 핵심은 우주”라며, “위성 정찰, 통신, 유도체계, 탄도미사일 모두 우주를 경유한다. 누가 우주를 먼저 장악하느냐가 국가의 운명을 결정짓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이 독자적 우주 무기체계를 갖추는 것이 ‘전략적 자립’의 출발점이라고 했다.
“우주 로봇이나 무인 정비선, 위성 수리용 소형 셔틀 같은 신개념 우주기기를 개발해야 합니다. 미국도 아직 본격화하지 못했어요. 우리가 먼저 하면 세계 시장을 선도할 수 있습니다.”
한국형 위성산업의 꿈...IMF에 멈춰선 ‘현대전자 우주연구소’
김 박사는 NASA 등 미국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90년대 중후반 고국에서 위성사업의 터전을 닦았다. 한국 최초의 통신위성 ‘무궁화 1호·2호’ 발사에 참여한데 이어, 1996년에는 현대전자 위성연구소 창립 소장 겸 위성사업단장으로 영입돼 국내 민간기업이 독자적으로 우주산업에 뛰어드는 대장정을 이끌었다.
“그때 현대전자는 반도체와 정보통신으로 승부를 걸고 있었지만, 정주영 명예회장과 정몽원 회장은 이미 ‘미래는 우주에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과감히 위성 개발에 투자했죠.”
김 박사는 연구소 설립과 동시에 ‘텔레데식(Tele-Desic)’ 위성통신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이 사업은 당시 빌 게이츠와 폴 앨런이 주도하던 차세대 위성 인터넷망 구상과 맥을 같이했다. 그는 미국의 휴즈(Hughes), 보잉(Boeing), 텔레데식 컨소시엄 관계자들을 직접 설득해 한국형 위성 대량생산 체계를 제안했다. “기술은 부족했지만, 현대의 생산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며, “인공위성을 ‘천 기(1000기)’ 단위로 생산해 세계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외국 기술진을 울산조선소, 현대자동차, 이천 반도체 공장 등으로 안내하며 현대그룹의 압도적인 생산 시스템을 보여줬다. “보잉 관계자들이 조선소를 보고 깜짝 놀랐다. ‘한 번도 배를 만든 적 없던 나라가 2년 만에 항공모함급 선박을 완성했다면, 위성도 못 만들 이유가 없다’며 감탄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하지만 그 때의 꿈은 1998년 IMF 외환위기로 좌초됐다. 은행들이 대기업 대출을 전면 중단하면서 당시 미국에 반도체공장을 2개나 짓고 있던 현대전자는 돈이 끊기면서 결국 위성연구소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대전시에 확보해둔 75만 평 규모의 연구소와 공장부지 조성작업도 그대로 멈췄다. 그는 “현대전자 위성사업을 둘러싼 스토리를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면서, 세월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안타깝다고 했다.
하지만 “그 당시 연구원 50명을 미국으로 보내 1인당 100만 달러씩 들여 첨단 위성 기술을 배우게 했는데, 그 경험과 인력이 훗날 한국 우주산업의 토대가 됐다”고 말했다.
지난 15일 서울 여의도에서 만난 김봉전 콜로라도주 한인회장. 한국형 무기체계 K-방산, “기술력으로 세계시장 매료”
우주로켓 전문가인 김 박사의 눈에 최근 K-방산의 약진이 예사롭지 않다. 한국형 방위산업, 이른바 ‘K-방산’이 세계 시장에서 빠르게 존재감을 키우고 있는 배경에는 기술 집약도와 환경 적응력, 그리고 국산 반도체 기반의 정밀 레이더 기술이 뒷받침하고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한국산 무기는 단순히 값이 싸서 팔리는 게 아닙니다. 기술이 뛰어나기 때문이에요. 우리 국토는 산악이 많고, 사계절 기온차도 심하잖아요. 그 복잡한 환경을 버텨낼 수 있는 무기라면, 어디서든 통합니다.”
그는 특히 K2 전차와 K9 자주포의 성능을 구체적인 사례로 설명했다.
“사막의 40도 폭염에서도 시동이 한 번에 걸리고, 북유럽의 혹한에서도 멈추지 않습니다. 미제나 독일제 탱크는 온도 변화에 취약해 고장이 나기도 하지만, 한국산 전차는 복합소재 장갑으로 가볍고 견고합니다. 공격력은 동급 최고 수준이에요. 2.5km 거리에서 쏴도 90% 이상 명중률을 기록합니다. 움직이면서도 정확하게 타격할 수 있는 유일한 전차에요.”
그는 한국이 개발 중인 KF-21 보라매 전투기에 대해 “사실상 스텔스 전투기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외형은 F-35보다 약간 작지만, 내부 무장 설계와 레이더 성능은 거의 대등하다”고 말했다.
K-방산의 강점은 성능뿐 아니라 가격 경쟁력과 납기 신속성에도 있다. 김 박사는 “폴란드와 사우디가 한국산을 선택한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평가했다.
콜로라도에서 꿈꾸는 ‘모국의 미래’
은퇴 후에도 그는 콜로라도 한인사회를 위해 봉사하며, 차세대 과학 인재 육성을 위한 장학사업과 멘토링을 이어가고 있다.
“이민 1세대가 경제를 일으켰다면, 2세대는 과학과 기술로 한국과 미국을 잇는 가교가 돼야 합니다. 우리 젊은이들이 우주를 향한 꿈을 포기하지 않길 바랍니다.”
그는 우리나라 젊은세대가 의대로 몰리는 현실에 대해 중국과 비교하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그럼에도 한국의 우주·방위산업 발전 가능성에 깊은 확신을 나타내며 “지금이야말로 한국이 우주산업 주도권을 잡을 마지막 골든타임”이라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그는 기회가 오면 그간의 경험과 지식을 고국을 위해 쓰고 싶다고 말했다.
* 김봉전 박사 약력
▲서울대 공대(자동차공학 68학번) 졸업, 퍼듀대 우주항공공학 박사 ▲前 NASA 주요 계약사 락웰 인터내셔널 엔지니어 ▲前 록히드마틴(마틴 마리에타) 대륙간탄도미사일 설계 책임 ▲한국통신공사 위성사업본부 발사감리국장(1993~1996) ▲현대전자 인공위성사업부 본부장 겸 현대위성연구소 소장. 상무이사(1996~1998) ▲한화 우주연구소(삼성테크윈) 우주로케트 기술자문(2013~2015) ▲KAIST 항공우주학과 겸직 교수(2014~2015) ▲민주평통 글로벌 전략 특별위원(2024~2025) ▲現 콜로라도주 한인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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