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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섭칼럼] 재외동포 지원, 말로 끝나선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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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회 작성일 25-12-09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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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섭(인하대 정책대학원 이민다문화정책학과 초빙교수)김봉섭(인하대 정책대학원 이민다문화정책학과 초빙교수)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국무회의에서 “재외국민 한 명, 한 명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UAE 동포간담회에서는 현지 한글학교 라이센스 등의 어려움을 듣고 “전 세계 한글학교 실태 전수조사”를 지시했다고 한다. 그러나 동포사회 반응은 복합적이다. “이번에는 정말 달라질까”라는 기대와 “또 말뿐이겠지”라는 체념이 교차한다. 재외국민 보호와 한글학교 지원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정책 과제가 왜 수십 년째 제자리인가.

2023년 기준 해외 체류 한국 국적자는 246만 명, 외국국적 동포는 461만 명, 무국적 동포까지 포함하면 700만 명을 넘는다. 국제결혼가정자녀, 입양동포자녀, 4세대 이하 한인 후손들까지 합치면 800만 명을 훌쩍 넘어선다. 법적 지위·정착 조건·요구가 서로 다른 이들을 국가는 오랫동안 ‘재외동포’라는 하나의 범주에 묶어왔다. 이로 인해 재외국민·외국국적 동포·무국적 동포가 각각 어떤 법과 제도 아래 어떤 보호를 받는지가 모호해졌고, 이는 단순한 행정 비효율을 넘어 국가 책임의 범위 자체를 흐릿하게 만들었다.

문제의 뿌리는 분명하다. 1997년 재외동포재단법(외교부), 1999년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법무부), 2007년 재외국민교육지원 등에 관한 법률(교육부), 2019년 재외국민보호를 위한 영사조력법(외교부) 등 핵심 법률들이 서로 적용 대상을 넓히며 충돌했다. 2023년 재외동포기본법이 ‘재외국민·외국국적 동포·무국적 동포’라는 기본 범주를 도입했음에도, 정책은 재외동포재단 시절(1997~2023)과 크게 다르지 않다. 보여주기식 예산 증액이나 인력 보강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해법은 우선순위를 재설정하는 것이다. 첫째, 한국 국적을 가진 재외국민 문제부터 획기적으로 정비해야 한다. 재외국민은 해외에 거주할 뿐 ‘대한민국 국민’이다. 교육·근로·납세·병역 등 의무와 기본권·청구권·참정권이 거주지에 따라 제약받지 않도록 법과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헌법 제2조 제2항이 명시한 재외국민 보호의무는 부처 간 충돌하는 하위 법체계 속에서 사실상 무력화되어 있다.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현재 별도 운영 중인 제1차 재외국민보호 기본계획(2021~2025) 역시 제1차 재외동포정책 기본계획(2024~2028) 틀 안에서 다시 설계해야 한다. 단기 방문자까지 재외국민 보호 범주에 포함할지에 대한 정책적 재검토도 필요하다.

둘째, 외국국적 동포가 다수인 지역은 구조가 훨씬 복잡하다. 재외국민보다 외국국적 동포 지원이 더 우선되는 듯한 ‘역차별 논란’은 수십 년째다. 재외동포청 신설 이후에도 외교·법무·문체·교육·산업·고용·양성평등·통일·민주평통 등 기존 부처의 기능은 그대로라 정책 통합의 사각지대가 곳곳에 남아 있다. 한인회·한글학교·한상·차세대·문화예술·언론단체 등 동포사회의 핵심 조직을 체계적으로 육성하는 국가전략이 부재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셋째, 역대 정부의 구조적 방치도 문제를 키웠다. 해외 사건·사고 대응은 여전히 ‘사고 이후’ 단계에 머무르고, 교육·복지·법적 보호는 임시 처방이 반복된다. 대통령이 “세심한 행정 서비스”와 “한글학교 전수조사”를 지시한 지금도 예산·인력·권한은 따로 움직이고, 부처 간 기능 중복과 책임 공백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많은 공관에서 민원·사고 대응이 여전히 지연되는 현실은 이를 증명한다.

2012년 재외국민 참정권 도입 이후 동포사회가 국내 정치의 ‘해외 전장’이 된 것도 뼈아프다. 화합과 상부상조로 유지돼온 공동체는 정파·이념·지역 갈등으로 급속히 약화됐고, 국가는 분쟁 조정 기능조차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참정권은 국내와 해외를 잇는 다리가 되기는커녕 진영 대립의 통로가 되었다. 재외선거 환경 개선보다 훨씬 시급한 문제다.

“따뜻한 말”은 충분하다. 이제는 구조를 바꿀 때다. 우선, 재외국민 보호는 국가의 직접 책임이라는 원칙을 명확히 해야 한다. 국적 보유자의 생명·권리·안전 보호가 외국국적 동포 정책과 뒤섞이는 순간 책임성은 희미해진다. 주요 선진국이 해외 위험지역 자국민 보호를 국가안보 수준에서 다루는 이유다. 대통령의 문제의식이 외교부의 체질 개선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다음으로, 외국국적 동포가 다수인 지역은 지원 전략 자체가 달라야 한다. 혈통·언어·문화·역사라는 장기 자산을 기반으로 교육·문화·경제 협력을 구조화하고, 정체성 함양과 상호 이익 공유 모델을 설계해야 한다. 재외국민보호 업무에서 상대적으로 떨어져 있는 재외동포청 역시 재외국민 지원의 디테일을 강화하고 동포사회와의 ‘휴먼 터치’를 확대해야 한다. 이것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외국국적·위기·무국적·재한 동포까지 보듬겠다는 것은 우선순위가 틀린 것이다.

끝으로, 글로벌 시대 700만 재외동포는 단순한 ‘상상의 공동체’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미래 자산이며 국가 전략의 핵심축이다. 정부가 바뀌고, 국회 다수당이 누구든, 동포사회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정책과 사업은 지속적으로 개발돼야 한다. 제도와 행정도 안정적으로 개선돼야 한다. 경제·외교·안보·통일·국방·통상, 심지어 AI에 쏟는 관심의 10%만이라도 재외동포 육성에 투자해야 할 때다.

대통령의 연이은 발언에 대한 동포사회의 기대는 크다. 그러나 말만으로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전 세계에 흩어진 재외국민의 안전과 권리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 이것이 재외동포정책 정상화의 첫걸음이다. 전 세계 한글학교에 다니는 동포 자녀들의 교육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 이것은 대한민국의 품격이 걸린 문제다. 한국 사회는 재외동포사회와 어떻게 연대하고 동반할 것인지 진지하게 성찰해야 한다. 그 답이 대한민국의 미래 국력과 글로벌 국가로서의 이미지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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