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이영현 옥타 명예회장이 남긴 ‘유산 세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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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회 작성일 26-02-21 16:20본문
고(故) 이영현 옥타 명예회장이 남긴 ‘유산 세 가지’
“계약서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입니다.”
- 박철의 기자
- 입력 2026.02.20 17:52
- 수정 2026.02.21 14:19
- 댓글 0
고 이영현 회장이영현 세계한인경제무역협회(월드옥타) 명예회장이 2월 17일 캐나다에서 향년 84세로 별세했다. 2년여 전 폐섬유증 진단을 받고 투병해오다 온타리오주 리치몬드힐의 한 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조문은 2월 26일 토론토 영락교회에서 진행되며, 월드옥타는 2월 24일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25~26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본부 사무실(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 8층)에 분향소를 마련해 추모의 시간을 갖는다.
박종범 월드옥타 회장은 18일 추모사를 통해 “이영현 회장님께서 ‘내 이야기를 들은 젊은이 가운데 단 한 사람이라도 세계적 거상이 나온다면 그것으로 내 역할은 충분하다’고 하신 말씀에는 성공보다 나눔을 먼저 생각한 삶의 철학과 미래 세대를 향한 깊은 사랑이 담겨 있다”며 “도전과 신뢰, 헌신의 정신은 앞으로도 월드옥타가 이어가야 할 가장 큰 길”이라고 밝혔다. 고인의 삶은 ‘메이드 인 코리아’, ‘네트워크’, ‘차세대’ 세 단어로 요약된다.
‘메이드 인 코리아’를 향한 집념
그는 평생 월드옥타와 함께 세계를 누비며 한국 상품의 가치를 높이는 데 헌신했다. 값싼 하청 생산국이라는 인식을 넘어, 기술과 품질, 신뢰의 상징으로 ‘메이드 인 코리아’를 자리매김하는 것이 그의 꿈이었다. “한국인이 만들면 다르다”는 믿음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그가 평생 증명해온 철학이었다.
1960년대 초 서울 경복고등학교에서 아이스하키 선수로 뛰던 그는 스케이트 날에 새겨진 ‘Made in Canada’ 문구를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선진국의 기술력과 브랜드의 힘은 어린 학생의 가슴에 오래 남았다.
“언젠가는 ‘메이드 인 코리아’가 세계에서 통하는 날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1966년 그는 단돈 200달러를 들고 캐나다로 향했다. 아이스하키 유학길이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체격의 한계를 절감한 그는 운동을 접고 사업의 길로 방향을 틀었다. 좌절이었지만, 동시에 더 큰 사명의 출발점이었다.
2019 미국 동부 통합 차세대 글로벌 창업무역스쿨에서 고 이영현 회장(가운데) 이 차세대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장면.그가 선택한 분야는 무역이었다. 당시 북미 시장에는 일본과 중국 상품이 널리 퍼져 있었지만, 그는 고집스럽게 한국 상품만을 취급했다. 장난감, 요강, 빨래판 등 품목을 가리지 않았다. 돈이 되는 것이면 무엇이든 팔되 원칙은 하나였다. “한국산일 것.”
“내가 파는 물건이 곧 대한민국의 얼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집념은 결실을 맺었다. 연간 1억 달러 규모의 무역을 일궈내며 ‘한국 상품 전도사’로 불렸다. 2002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훈했고, 2012년에는 영국 여왕 다이아몬드 주빌리 메달, 2019년에는 캐나다 건국 150주년 상원 메달을 받았다. 그러나 그에게 가장 큰 보람은 ‘메이드 인 코리아’가 해외 시장에서 인정받는 순간이었다.
세계를 잇는 네트워크
그의 진정한 업적은 개인의 성공을 넘어선다. 1981년 서울에서 출범한 월드옥타 창립 멤버로 참여한 그는 2021년까지 40년간 80차례 열린 월드옥타 행사(4월 대표자대회, 10월 경제인대회)에 단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 월드옥타의 성장사를 이야기할 때 그를 빼놓기 어려운 이유다.그에게 월드옥타는 친목단체가 아니라 ‘경제 영토를 넓히는 전초기지’였다. 그는 각국 지회를 돌며 “우리는 흩어져 있지만 경제로 하나”라고 강조했다. 정보 공유와 공동 진출, 협업 모델을 체계화하며 한인 경제인들을 ‘팀 코리아’로 묶어냈다.
차세대를 향한 투자
2010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 그는 미래 세대에 집중했다. 성과를 지키는 것보다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재임 시절 설립을 주도한 ‘차세대 무역스쿨’은 2003년 시작 이후 3만여 명이 참여한 글로벌 인재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그는 직접 강단에 서서 성공과 실패를 가감 없이 나누며 청년들에게 방향을 제시했다.
그에게 애국은 거창한 선언이 아니었다. 한국 상품을 하나 더 판매하는 일, 해외 청년 한 명에게 도전의 용기를 심어주는 일, 네트워크 하나를 더 연결하는 일이 곧 애국이었다. 그는 “성공의 아버지는 노력이고, 노력의 아버지는 즐거움”이라고 말하며 평생 현장을 지켰다.
이영현 회장이 남긴 유산은 건물이나 재산이 아니다. 세계 75개국에 뻗어 있는 한인 경제 네트워크, ‘메이드 인 코리아’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세계 시장을 향해 도전하는 차세대 무역인들이다. 그의 삶은 한 기업인의 성공담을 넘어, 모국 사랑을 행동으로 증명한 60년의 기록이었다. 이제 그는 떠났지만, 세계 곳곳에서 뛰고 있을 수많은 한인 경제인들의 가슴 속에 그의 신념은 여전히 살아 있다. ‘메이드 인 코리아’라는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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