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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윤칼럼] 여권 한 장으로 지워지는 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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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5회 작성일 26-08-26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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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국적을 취득한 한국인 적색수배자, 어떻게 잡을 것인가

한국에서 죄를 짓고 동남아로 도피한다. 현지 여성과 결혼하고 사업을 일으켜 자리를 잡은 뒤, 어느 순간 그 나라의 국적까지 취득한다. 그사이 한국에서는 검찰이 기소하고 인터폴 적색수배까지 내려지지만, 수배서가 도착한 현지 정부의 답변은 허무할 정도로 간단하다. “그 사람은 우리 국민입니다.”

여권 색깔이 바뀌었을 뿐 범죄 사실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국적이 바뀌는 순간 한국 사법권의 동력은 급격히 약화된다. 동남아 한인사회가 반드시 직시해야 할 문제다.

국적은 국가의 보호를 제공하지만 과거의 범죄를 세척해 주지는 않는다. 핵심은 ‘시간의 순서’다. 범죄 발생, 수사 개시, 출국, 기소, 적색수배, 국적 취득. 이 여섯 시점을 하나의 타임라인으로 구성하면 단순한 귀화인지, 수사를 피하기 위한 의도적 도피인지 명확히 가려낼 수 있다. 외국 국적을 취득했다는 사실만으로 상대국이 국적을 박탈하게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귀화 과정에서 허위 서류를 내거나 범죄 경력을 고의로 숨겼다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프린스그룹 천즈 회장 사건이 그 선례다. 캄보디아 국적을 취득해 최고위층과의 관계까지 공공연했던 그는 2025년 미국과 영국이 대규모 사기 범죄의 핵심으로 지목하자 국적을 박탈당하고 중국으로 송환됐다. 캄보디아 정부는 단순한 범죄인 인도 절차가 아니라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 국민이 되었는가”라는 질문에서 다시 접근했다. 국적 박탈은 예외적이고 정치적 부담이 큰 조치지만, 귀화한 범죄자라도 영원히 국적 뒤에 숨을 수는 없다는 가능성을 입증했다.

접근법은 세 가지다. 첫째, 귀화 서류의 적법성 검증이다. 범죄 경력과 수사 사실을 사실대로 신고했는지, 위조나 허위 기재는 없었는지를 따져야 한다. 한국 정부는 “적색수배자이니 체포해 달라”는 요청에 그치지 말고 타임라인과 증거를 문서로 제공해 현지 정부가 스스로 국적 취득의 적법성을 재검토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둘째, 온라인 사기·인신매매·불법 게임·자금세탁 등 초국가적 범죄를 현지에서 운영하고 있다면 이는 현지의 치안 문제다. “귀국의 국적을 이용해 국제범죄를 지속하는 위협 요소”임을 입증해 외교적 해법을 열어야 한다.

셋째, 서류가 완벽하고 조용히 살며 자국민 보호를 받는 경우다. 이때는 현지에서 저지른 범죄 정황을 포착해 현지 법으로 처벌받도록 사법 공조를 해야 한다.

신병 확보만큼 시급한 것이 범죄수익 추적이다. 차명계좌, 부동산, 가상자산, 현지인 명의 사업체로 숨긴 자금을 동결하고 환수하는 국제 공조를 즉시 가동해야 한다. 신병을 당장 확보하지 못하더라도 자금줄을 끊으면 조직의 기반은 무너진다.

이 문제를 법률과 외교의 언어로만 다뤄서는 안 되는 이유가 있다. 전 재산을 날리고 대출까지 받아 송금하고 가족의 삶마저 무너진 피해자들에게, 가해자가 새 여권을 들고 해외에서 호화롭게 산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잔인한 2차 가해다. 우리가 끝까지 시선을 놓지 말아야 할 대상은 수배자가 아니라 피해자다.

적색수배서 한 장 던져놓고 처분만 기다리는 시대는 끝났다. 법무부, 외교부, 수사기관, 금융당국이 한 팀으로 움직여야 한다. 한인사회도 달라져야 한다. “국적이 바뀌었으니 한국 법이 미치지 않는다”는 방관이 면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교민 사회가 지켜야 할 것은 범죄자가 아니라 성실히 살아가는 교민들의 명예다.

이제 정부는 “그 사람이 어느 나라 국민인가”가 아니라 “그 사람은 어떻게 그 나라 국민이 되었는가”를 물어야 한다. 그리고 현지 정부에 촉구해야 한다. “자국민이라는 이름이 국제범죄자의 방패가 되도록 방치할 것인가”를. 국적과 이름, 거처는 바꿀 수 있어도 범죄의 기록과 피해자의 눈물은 바꿀 수 없다. 여권 한 장으로 지워지는 죄는 없다.

필자소개(김대윤)
캄보디아 화장품협회(CCA) 고문
캄보디아에서 왕립법률경제대학교 대학원(사법 전공)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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