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패권전쟁] ③ 의공학도도 AI 전문가로…싱가포르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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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6회 작성일 25-10-27 13:22본문
9개월 월급 주며 실전 교육…AI 인재 400명 배출
기업은 솔루션 확보·정부는 인재 육성 '선순환
(싱가포르=연합뉴스) 현혜란 기자 = "인재 유출이요? 저는 걱정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양성한 인재가 세계 무대에서 활동한다니, 오히려 자랑스러울 따름이죠. 우리는 다른 인재를 또 길러내면 되니까요."
싱가포르 인공지능(AI) 인재 양성의 요람 'AI 싱가포르'(AISG)의 로런스 리우 AI 혁신 국장에게 열심히 키워놓은 AI 인재가 외국으로 떠나버리는 게 우려되지 않느냐고 물으니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공들여 키운 인재가 해외로 나가면, 새로운 인재를 키우면 된다는 발상에서는 자신감이 흘러넘쳤다. 싱가포르가 AI의 파괴력을 알아보고 일찌감치 적극적으로 투자한 결실을 누리고 있다는 게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싱가포르가 2017년 5월 설립한 AISG는 AI 선도국 도약을 목표로 설립한 산학연관(産學硏官) 조직이다. AI 기술을 연구·개발하고, 인재를 양성하며, 그 결과물을 업계에 전파하는 산파 역할을 한다.
AISG를 움직이는 핵심 축은 실전 경험을 갖춘 AI 전문가를 육성하는 'AI 견습 프로그램'(AIAP·AI Apprenticeship Programme)과 기업이 원하는 AI 설루션을 개발하는 '100가지 실험'(100E·100 Experiments)이다.
AIAP 참가자는 100E에서 실무를 배우고, 기업은 필요한 AI 서비스를 얻어가는 상생 구조 속에서 두 프로그램은 맞물려 돌아간다.

(싱가포르=연합뉴스) 현혜란 기자 = 로런스 리우 AI 싱가포르(AISG) AI 혁신 국장이 지난 8월 28일 싱가포르 국립대학교(NUS)에 있는 AISG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5.10.27 runran@yna.co.kr [재판매 및 DB 금지]
◇ 9개월간 AI 전문가 육성…전공 무관·월급 400만원
리우 국장은 AISG 출범 직후 AI 프로젝트를 수행할 AI 엔지니어 채용에 나섰다가 충격에 빠졌다. 300명이 넘는 지원자가 있었지만, 싱가포르 국적자는 5명뿐이었기 때문이다.
"싱가포르 사람이 AISG 엔지니어링 팀의 중심이 아니라면, 우리는 결코 진정한 'AI 싱가포르'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죠."
싱가포르 지원자가 적은 이유는 두 가지로 추정됐다. 하나는 AISG가 싱가포르 국립대(NUS) 안에 있다 보니 급여가 적다는 선입견이 생겼을 가능성, 다른 하나는 AI 역량을 갖춘 싱가포르인이 많지 않을 가능성이다.
첫 번째 이유 같은 오해라면 어쩔 도리가 없지만, 두 번째 이유는 달랐다. 리우 국장은 싱가포르에 AI 역량을 갖춘 인재가 없는 게 문제라면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렇게 AIAP가 탄생했다.
AIAP는 전공 제한이 없다. 문과생이라도 파이썬 같은 AI 기술 구현에 필요한 기본적인 지식이 있는 싱가포르 시민권자라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 단, 기술 과제 시험과 면접을 통과해야 한다.
활동 기간은 9개월이다. 첫 두 달은 프로젝트 기반 그룹 과제를 수행하고, 나머지 일곱 달은 AISG 또는 100E에서 현직 AI 엔지니어와 함께 실무를 익힌다.

(싱가포르=연합뉴스) 현혜란 기자 = AI 싱가포르(AISG)가 운영하는 AI 견습 프로그램(AIAP) 출신의 니콜라스 림(31) 씨가 지난 8월 26일 싱가포르 국립대학교(NUS)에 있는 AISG 사무실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2025.10.27 runran@yna.co.kr[재판매 및 DB 금지]
기본 역량과 의지만 있다면 누구든 AI 전문가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이 AIAP를 관통하는 철학이다. 대학에선 AI와 접점이 없는 의공학을 전공했지만, 지금은 틱톡에서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로 일하는 AIAP 제4기 졸업생 니콜라스 림(31) 씨가 이를 절감했다.
림 씨는 "AI는 관련 박사 학위가 있는 사람들, 혹은 미국 등으로 유학을 다녀온 사람들만 진출할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해 내가 갈 길이 아니라고 여겨왔는데 AIAP 덕분에 새로운 길을 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새로운 기수를 뽑을 때마다 지원서를 검토하는 리우 국장은 "지원자의 전공은 그가 AI 엔지니어가 될 수 있는지와 무관하다"며 "우리가 추구하는 역량에만 집중해 지원자를 평가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금까지 선발된 AIAP 참가자 중 컴퓨터공학 전공자는 20%에 불과했다고 리우 국장은 덧붙였다.
AIAP는 1년에 2∼3개 기수를 선발한다. 한 기수는 그해 지원자 역량에 따라 20∼40명 안팎으로 구성된다. 선발 첫 해 지원자는 160여명이었지만, 이제는 300∼400명이 몰릴 만큼 인기가 생겨 경쟁률이 높아졌다.
AIAP의 백미는 기술을 배우면서 돈을 번다는 점이다. 활동기간 내내 4천싱가포르달러(약 400만원)를 월급으로 받는다. 먹고 사는 걱정을 하느라 교육과 실습에 집중하지 못하는 일을 막기 위한 조치다.
AIAP는 지난 8년간 400명이 넘는 AI 엔지니어,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등 AI 전문가를 배출했고, 85% 이상이 취업에 성공했다.

(싱가포르=연합뉴스) 현혜란 기자 = AI 싱가포르(AISG) 사무실이 입주해 있는 싱가포르 국립대학교(NUS) 건물. 2025.10.27 runran@yna.co.kr [재판매 및 DB 금지]
◇ 민관 원팀으로 AI 기술 개발…산업현장 문제 해결
100E는 기업이 원하는 AI 서비스를 개발하는 프로젝트다. AI 기술과 인재를 실제 기업이 겪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활용하자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취지다.
100E를 수행하는 팀은 프로젝트 책임자, AI 엔지니어, 견습생 4∼6명으로 구성된다. 최소 기능 구현 제품(MVP) 개발을 목표로 6개월간 작업한다.
싱가포르에 기반이 있는 기업이라면 국적에 상관없이 100E에 지원할 수 있다. 단, 싱가포르에 운영조직이 있어야 하고, 현지 AI 엔지니어를 채용해야 한다.
기술의 시장성 확인, 충분한 데이터 확보, 투자수익률(ROI) 담보, 사내 엔지니어팀 존재 등 까다로운 기준도 충족해야 한다.
프로젝트 비용은 정부와 기업이 분담하되, 기업 부담금의 30%는 현금으로 내야 한다는 조건까지 붙는다. 분담 비율, 지적재산(IP)은 과제 유형에 따라 달라진다.
100E는 애초 금융, 보건, 도시관리 부문에만 한정돼 있었지만, 정부 기관을 포함한 다양한 분야에서 요청이 빗발쳐 울타리를 걷어냈다.

[Q&M 홈페이지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싱가포르의 치과 그룹 Q&M이 대표적인 100E의 수혜기업이다. Q&M은 자동으로 엑스레이 이미지를 분석해 충치 등 치아 상태를 감지하고 기록하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치과의사가 엑스레이를 판독하는 시간이 5∼10분에서 1분 미만으로 단축되면서 업무 효율성과 환자 경험이 동시에 개선됐다.
Q&M의 성공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견습생을 정식 AI 엔지니어로 채용했고, 100E에 다시 한번 지원해 2차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AI 기술로 기업이 겪는 문제를 해결하고, 견습생은 취업 기회를 얻고, 기업은 필요한 인재를 확보하는 AISG가 추구하는 선순환을 보여준 사례다.
Q&M을 포함해 지난 8년간 180여개의 프로젝트가 승인받았고, 이 중 100개 이상의 프로젝트가 MVP를 내놓았다. 5%가량은 개발 과정에서 폐기됐으며, 나머지는 개발 단계에 있다. 개발한 기술을 제품화하느냐는 기업의 판단에 달렸다.
AIAP와 100E가 보여준 성과를 바탕으로 AISG 모델은 이제 싱가포르를 넘어 이집트 등 여러 나라로 뻗어나가고 있다. 인재가 떠나도 걱정 없다던 리우 국장의 자신감 뒤에는 정부와 기업, 인재가 함께 돌아가는 시스템이 깔려있었다.
※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run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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