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생명줄 ’메콩강의 위기’- 생존 모색하는 베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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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6회 작성일 25-05-26 12:23본문
동남아 생명줄 ’메콩강의 위기’- 생존 모색하는 베트남
중국, 미얀마,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
6개국 관통하는 4200여km '어머니의 강'
상류서 시작된 개발로 '몸살'...'강 지킴이' 나선 베트남
외교적 균형, 지역 평화 얽힌 거대한 퍼즐 풀 수 있을지
- 박정연 재외기자
- 입력 2025.05.23 18:27
- 수정 2025.05.24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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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콩강은 티벳 탕그라산에서 발원, 6개국을 거쳐 흐른다. [출처= 브리테니카 사전]](https://cdn.dongponews.net/news/photo/202505/52778_204908_253.gif)
“물은 흐르고, 생명이 자란다.”
티벳 고원의 만년설에서 시작된 물줄기는 4200여 킬로미터를 달려 동남아시아의 생명줄이 된다. 메콩강, 사람들은 이 강을 ‘어머니의 강’이라 부른다.
중국, 미얀마,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 등 6개국을 거쳐 흐르는 강줄기에는 어부의 하루와 농부의 땀이 얽혀 있고, 아이들의 웃음과 노인들의 기도가 스며 있다.
그러나 이 거대한 생명의 강이 지금, 상류에서 시작된 개발의 파도로 흔들리고 있다. 중국과 라오스, 그리고 캄보디아가 댐과 운하를 앞세워 강을 막고 굽히는 사이, 하류 국가인 베트남은 그 여파에 휘청이고 있다. 메콩강이 전하는 물은 줄어들고, 흙은 멈췄고, 생명은 고통받고 있다.
이제 베트남은 외교와 경제, 생태의 삼각파도를 타며 이 거대한 강의 미래를 지키기 위한 싸움에 나서고 있다. 과연 ‘어머니의 강’은 다시 모든 이의 품으로 흐를 수 있을까?
댐이 가둔 물, 삶을 위협하다
베트남의 메콩 델타는 한 해 농산물 생산량이 약 2400만t에 이르는 국가 최대의 식량 창고다. 전체 쌀 생산량의 절반, 수출량의 90%가 이곳에서 나온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새 이 땅은 메말라가고 있다.
중국은 '란창(瀾滄)강'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메콩강 상류에 12기의 대형 댐을 세웠다. 이들 댐은 우기에는 홍수를 막고, 건기에는 물을 저장한다. 하지만 그 결과 하류인 베트남에서는 자연적인 물 흐름이 차단되고, 퇴적물이 줄어들며 염수 침입이 심화됐다.
특히 2020년과 2023년에는 델타 지역 농민 수천 명이 가뭄과 염해로 농사를 포기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라오스 역시 ‘동남아시아의 배터리’를 자처하며 댐 건설을 이어가고 있다. 이미 78기의 수력발전댐이 가동 중이고, 60기 이상이 추가로 계획돼 있다. 문제는 이들 중 상당수가 메콩강 본류에 건설되거나 건설 예정이라는 점이다. 베트남이 거듭 반대 입장을 표명해도, 라오스는 주권을 이유로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운하가 만든 분수령, 캄보디아 푸난 테쪼 논란
가장 최근 베트남을 긴장시킨 것은 캄보디아가 추진 중인 푸난 테쪼 운하다. 이 운하는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서 캄폿까지 약 180km를 연결하는 초대형 인프라 사업이다. 표면적으로는 국내 물류를 활성화하겠다는 명분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메콩강의 수위를 변화시키고, 캄보디아가 더 이상 베트남을 거치지 않고도 태국만에 직접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드는 전략적 프로젝트다.
문제는 이 운하가 메콩강의 지류인 바삭강을 통해 수원을 확보한다는 점이다. 베트남 측 전문가들은 이 운하가 건기 때 메콩 삼각주 지역의 물 부족을 악화시킬 수 있으며, 침수 피해와 생태계 파괴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베트남 국회의 환경전문가 레 반 응아 의원은 “푸난 테쪼 운하는 메콩 삼각주를 넘어 국제적 논쟁이 될 수 있는 사업”이라며 “캄보디아가 환경영향평가를 공유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추진할 경우 베트남 정부는 국제사회에 문제를 제기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해는 한다", 베트남의 ‘복잡한 심경’
흥미로운 점은 베트남이 캄보디아에 강하게 반발하면서도 조심스러운 태도를 유지한다는 점이다. 메콩강을 공유하는 국가들의 현실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캄보디아는 현재 메콩강 연안의 토사 퇴적 감소와 기후변화로 심각한 농업 위기에 처해 있으며, 국토 균형발전과 해상 물류 독립을 위해 푸난 운하 같은 대규모 인프라가 절실하다.
캄보디아 정부는 “이 운하는 해수면 상승과 메콩강 범람을 고려한 것”이라며 “장기적으로는 베트남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베트남 외교부도 공식 논평에서 “캄보디아의 발전 권리는 존중돼야 한다”고 언급했으며, “그러나 국경을 넘는 수자원 개발은 반드시 투명성과 협력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고 단서를 달았다.
베트남이 ‘우려’를 표시하면서도 ‘이해’라는 표현을 병행하는 이유는, 메콩강 하류국 간의 민감한 관계와 지역 연대의 중요성을 고려한 것으로 해석된다.
![메콩강 하류 삼각주에서 살아가는 베트남사람들. [출처= 브리테니카 사전]](https://cdn.dongponews.net/news/photo/202505/52778_204909_2619.jpg)
메콩강위원회(MRC)의 한계
이런 상황에서 주목받는 기구가 바로 '메콩강위원회(MRC)'다. 1995년 설립된 이 위원회는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태국 등 4개국이 회원국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메콩강의 지속 가능한 이용을 위한 협의체다.
하지만 MRC는 법적 구속력이 없는 권고 기구에 불과하다. 중국과 미얀마는 회원국이 아닌 ‘대화 파트너’로서 정식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지 않는다.
실제로 중국의 댐 운영 데이터는 2020년이 돼서야 제한적으로 공유되기 시작했으며, 라오스와 캄보디아도 각종 개발 정보를 제때 보고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베트남 하노이 소재 정책 싱크탱크 FESV의 응우옌 투하이 연구원은 “MRC는 갈등을 중재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 서로 ‘통보’하는 형식에 머물고 있다”며 “실질적인 조율력을 갖추기 위해선 국제적 압력과 법적 틀의 강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국제사회와의 연대 전략
베트남은 이러한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란창-메콩 협력체(LMC), 미일호주 메콩 협력(MECO), 한-메콩 협력, 유럽연합(EU) 등의 틀에서 외교적 연대를 확대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메콩강 수자원 문제를 남중국해 이슈와 연결지어 ‘중국 견제 카드’로 활용하려 하고 있으며, 베트남도 이를 적극 활용 중이다.
한국 역시 2011년부터 한-메콩 외교장관회의를 통해 환경 보호, 농업 협력, 인프라 지원 등을 진행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디지털 기반 수자원 관리 시스템 도입에도 협력하고 있다. 다만 한국의 역할은 아직 초기 단계로, 좀 더 체계적인 장기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생존을 넘어 공존으로 : 베트남의 길
이처럼 메콩강을 둘러싼 베트남의 고민은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식량 안보, 에너지 전략, 외교적 균형, 지역 평화라는 거대한 퍼즐 속에 놓여 있다.
그렇다고 베트남이 상류 국가들을 비난만 할 수도 없다. 메콩강을 공유하는 이상, 공동의 미래를 설계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푸난 운하 문제에서도 드러나듯, 지역 국가는 각자의 생존 논리가 있으며, 이를 조율하지 않으면 ‘공멸’로 이어질 수 있다.
지금 베트남은 한편으로는 강하게, 다른 한편으로는 유연하게 외교적 줄타기를 하고 있다. 이것이 ‘어머니의 강’ 메콩이 다시 모든 생명을 품을 수 있는 조건일지도 모른다.
기억해야 할 것 하나
메콩강은 흐르기만 해도 좋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을 되찾기 위해, 지금 베트남은 고요히 그러나 단단히 저항하고 있다. 그 물소리는 지금도, 메콩 델타의 습지와 논두렁, 그리고 외교가의 조용한 회의실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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