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한국 기자들과 10일간 캄보디아를 둘러 본 ‘진짜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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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5회 작성일 25-10-27 11:34본문
[르포] 한국 기자들과 10일간 캄보디아를 둘러 본 ‘진짜 현장’
“위험하다고? 막상 와보니 오히려 평온했다”
국내 기자들과 현지 거주 기자가 둘러본 ‘범죄도시’ 프레임의 허상
- 박정연 재외기자
- 입력 2025.10.26 10:17
- 수정 2025.10.26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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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아침 프놈펜 시내에서 열린 시민마라톤 대회에 참가한 현지 시민들의 활기찬 모습 [박정연 재외기자]“와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안전하네요.”
프놈펜 떼쪼 국제공항 출국장.
열흘간의 취재를 마친 한국 기자들이 귀국 비행기를 기다리며 입을 모았다.
“처음엔 겁이 났어요. ‘오기도 전에 캄보디아는 위험하다’는 말이 너무 많았거든요. 그런데 막상 와보니 전혀 달라요. 도심은 평온하고, 사람들도 친절하구요.”
떠나는 그들의 얼굴에는 안도감과 아쉬움이 묘하게 섞여 있었다.
기자는 그들과 함께 10일간 프놈펜, 시하누크빌, 보꼬산, 포이펫을 돌았다. 이 중 보꼬산은 정부가 여행금지 지역으로 지정하기 하루 전, 국내 신문사 기자들과 급히 다녀온 곳이기도 하다. 이 지역에는 대학생 박모 씨가 고문 끝에 숨진 온라인 스캠 단지가 있다. 한국 언론이 연일 ‘범죄도시’라 부른 바로 그 현장을, 그들의 눈으로 직접 확인시키기 위해서였다.
“캄보디아, 정말 위험한가요?”
최근 한국 언론은 캄보디아를 폭력과 범죄의 온상처럼 묘사한다. ‘범죄도시’, ‘한인 납치’, ‘사기단지’ 같은 단어가 지난주 내내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일부 저급한 유튜버들은 조회수 장사를 위해 이미 보도된 내용을 과장하거나 왜곡하는 등 발버둥을 치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 서 보면 그 묘사는 현실과 너무나 다르다. 이는 국내 언론이 만들어낸 공포 프레임일 뿐이다.
약 2주 전부터 한국 취재진이 대거 프놈펜으로 들어왔다. 김진아 외교부 2차관의 입국부터 주캄보디아대사관 기자회견, 숨진 박모 씨 부검을 위해 들어온 국과수 관계자들, 김병주 의원의 대사관 앞 브리핑까지… 기자들은 그 현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동행했다. 그리고 카메라가 향한 곳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장면들이 얼마나 많은지도 직접 목격했다.
캄보디아정부가 우리나라 정부합동대응팀(단장 김진아 외교부 2차관)에 공개한 캄보디아 태자단지 입구 모습. [박정연 재외기자]“범죄도시국가? … 그러나 캄보디아 전체가 그런 것은 아니다”
정부가 여행금지 지역으로 지정한 보꼬산을, 지정 하루 전날 급히 다녀왔다. 국내 취재진과 함께 원구단지, 망고단지, 태자단지 등 한국인 연루 범죄 단지를 최소 서너 차례 더 방문했다. 국내 기자들에게 이 웬치들은 성지 방문 코스처럼 되어 있었다. 이들의 취재는 ‘웬치’라 불리는 범죄 단지뿐 아니라 프놈펜 도심 한복판과 일반 주거지역에서도 이어졌다. 한인 식당과 기업체를 들러 교민들의 목소리도 직접 확인했다. 그때마다 한국에서 온 기자들이 눈으로 보고 듣고 내린 결론은 한결 같았다.
“이런 곳이 있다고 해서 나라 전체가 위험하다고 단정하는 건 분명 옳지 않아 보이네요.”
또 다른 기자는 “도심은 매우 평온하고, 밤늦게도 위험함을 전혀 느낄 수 없어요. 여행 금지 조치는 전쟁이 난 것도 아닌데 우리 정부가 상황 파악을 못하고 오버한 것 같아요”
한국에서 취재 차 온 기자들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미안함도 섞여 있었다. 한국에서 그린 공포의 그림과 현실이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이다.
“정부는 여론에 휘둘렸고, 언론은 과장했다”
문제는 한국 정부와 언론이 이 ‘공포 프레임’을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정부는 포이펫·보꼬산·바벳 지역을 여행금지 구역으로 지정했다. ‘국민 안전을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지만, 현지 사정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취한 과도한 조치였다.
한 취재 기자는 말했다.
“도심 현지인들의 삶은 그저 평온하고 교민들은 범죄조직과 전혀 무관하게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다른 나라 사람들도 자유롭게 여행하는 것을 보고 조금 혼란스러웠네요. 한국인들만 여행 금지를 당한 건 좀 과한 조치라는 생각이 드네요. 솔직히 정부가 여론과 야당 눈치를 보고 너무 서둘러 결정한 것 같습니다.”
캄보디아 도심의 밤풍경은 생각보다 더 안전하고 평온해 기자들도 놀란 표정이었다. 기자들은 저녁 식사 후 혼자 시내를 걸으며 택시 기사와 담소를 나누고, 야시장 사람들과 사진도 찍었다. 아이들의 큰 눈망울과 해맑은 미소에도 넋을 잃은 모습이었다.
“솔직히 필리핀보다 훨씬 안전한 것 같아요”
캄보디아는 방관만 하는 나라가 아니다. 캄보디아 정부도 손 놓고 있지 않다. 합동대응팀 회의에서 관계자들은 “한국인 범죄자 재입국을 막기 위해 블랙리스트를 공유하겠다”고 밝혔다. 온라인 사기 단속과 외국인 범죄자 추적도 강화 중이다. 지난 6월 한 달간 외국인 3,000명이 체포됐고, 그중 한국인은 57명이다.
현지 관료들은 “중국계 조직과의 연결고리를 끊는 건 쉽지 않지만, 우리도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캄보디아 정부가 우리 정부 대표단과 국내 언론에 온라인 범죄조직이 운영하던 ‘태자 단지’를 공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곳은 캄보디아 정부 입장에서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범죄 현장이지만, 투명하게 공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캄보디아 정부가 비협조적이라는 잘못된 오해를 해선 안되는 이유다.
참고로, 이 단지는 프린스그룹 천즈(Chen Zhi) 회장 소유로 알려졌으며, 그는 미국과 영국의 제재를 받아 약 21조 원 규모의 가상자산이 동결된 상태다. 현재 천즈 회장은 도피 중이다.
지난 19일 주캄보디아한국대사관 앞에서 기자 브리핑을 하고 있는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위원. [박정연 재외기자]분명 우리 눈높이에서 보면 캄보디아 정부의 대응이 미흡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단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 현지 정부가 비협조적으로 보인다는 표현 역시 사실 확인이 필요하다. 국가 간 조율이 필요한 사안에 대해 우리 정부의 요구를 즉시 수용하지 않았다고 해서, 이를 비협조적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지금 교민사회가 직면한 진짜 문제는 ‘위험’이 아니라 ‘왜곡’이다. 교민들은 범죄보다 국내 언론의 과장된 보도로 더 큰 피해를 입고 있다. “거기 있으면 위험하다”는 한마디가 식당 손님을 줄이고, 생계마저 위태롭게 만든다. 해외에서 살아간다는게 얼마나 힘든지 동포들이라면 다 안다. 매일같이 그들의 불안한 눈빛을 마주해야 하는 기자에겐 고통스러운 현실일 뿐이다.
"지금 당장 진짜 필요한 건 ‘코리안 데스크’, 때를 놓치면 안된다"
일시적 보여주기식 대응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시스템 구축이 당장 필요하다. 현지 파견 경찰 인력을 잠시 늘린다고 온라인 사기 범죄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교민사회가 지속적으로 요구해온 ‘코리안 데스크’ 설치가 반드시 필요하다. 양국 경찰이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협력하고, 한인 범죄자 소탕에도 함께 나서는 구조가 마련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범죄는 더욱 교묘해지고, 교민들의 일상은 더욱 위태로워질 수 밖에 없다.
현지 이발소 풍경. 이발소 주인은 한국뉴스에서 캄보디아를 여행하기 매우 위험한 나라로 보도하는 건 아쉽다며, 한국인 관광객들이 예전처럼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정연 기자]열흘간 동행한 기자들이 하나둘 떠났다. 출국장 앞에서 마지막 인사를 나누며 한 기자가 말했다.
“처음엔 무서워 오기도 싫었는데, 와보니 캄보디아는 훨씬 평화롭고, 현지 사람들도 따뜻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네요.”
또 다른 기자는 “교민들의 삶이 이렇게 힘들게 될 줄 몰랐어요. 정부가 여행금지 조치를 빨리 풀었으면 좋겠네요. 저희도 노력해보겠습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들의 진심 어린 말 한마디, 위로 한마디에 기자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그래, 이것이 현장의 진짜 목소리다. 캄보디아는 지금도 평온하다. 국내 일부 언론들이 만들어낸 범죄 그림자 속에서도 사람들은 일하고, 아이들은 학교에 간다. 시장은 여전히 활기차다.
현지 교민사회가 직면한 진짜 문제는 ‘실제적 위험’이 아니라 ‘왜곡’이다. 교민들은 범죄보다 국내 언론의 과장과 왜곡으로 더 큰 피해를 입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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