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윤 칼럼] 캄보디아의 적은 내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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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8회 작성일 25-12-18 10:01본문
성장을 위해 탈피를 하는 동물이 있다. 껍질은 한때 몸을 보호했지만, 더 커진 몸에는 더 이상 맞지 않는다. 계속 그 안에 머무르면 보호가 아니라 족쇄가 된다.
농경사회는 토지를 중심으로 생존을 가능하게 했고, 산업사회는 공장과 노동을 통해 부를 축적했다. 각 단계의 ‘껍질’은 그 시대에는 최적의 보호막이었다. 그러나 몸이 커졌음에도 껍질을 벗지 못한 동물은 결국 질식한다. 산업사회적 사고와 제도에 머문 사회는 이미 정보가 자본이 된 시대에서 민첩하게 움직일 수 없다.
탈피의 순간은 언제나 가장 취약하다. 껍질을 벗는 짧은 시간 동안 동물은 외부에 그대로 노출되고, 사회 역시 변화의 과정에서 혼란과 저항, 불안을 겪는다. 그럼에도 탈피를 미루는 선택은 결국 성장을 포기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캄보디아 사회의 무의식 속에는 오랜 전쟁을 견뎌내고 살아남았다는 강한 자부심과 일종의 우월 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 거친 역사의 풍랑 속에서 민족을 지켜낸 그 투쟁심은 분명 존중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분명히 인식해야 할 사실이 있다. 21세기 국제 정치는 더 이상 총칼만으로 치러지는 전쟁이 아니며, 결코 혼자 싸워 이길 수 있는 전쟁도 아니라는 점이다.
과거의 전쟁이 병력과 용기의 대결이었다면, 현대의 전쟁은 ‘노하우’와 ‘우군(Ally)’의 대결이다. 특히 언론, 정보, 여론의 영역에서는 더욱 그렇다. 국제 사회에서 정당성을 확보하고 목소리를 키우기 위해서는 세계적 싱크탱크, 외신, 그리고 신뢰할 수 있는 국가들과의 촘촘한 네트워크가 필수적이다. 고립된 자부심은 더 이상 자산이 아니다. 오히려 독이 된다.
캄보디아에 지금 필요한 것은 과거의 승전 기록이 아니라, 복잡한 국제 이해관계를 읽어낼 현대적 전략가들과 그들을 뒷받침할 글로벌 파트너들이다. 이 지점에서 한국 여론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최근 일부 한국인 유튜버들이 태국 측 입장에 서서 침략을 정당화하는 듯한 자극적 콘텐츠를 생산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러나 이는 한국 사회의 주류 민심과는 거리가 멀다. 대다수의 한국인은 캄보디아의 잠재력을 믿고 있으며, 진심으로 이 나라의 번영을 바라고 있다.
한국인들은 캄보디아가 겪어온 아픈 역사에 공감하고, 다시 도약하는 과정에서 든든한 파트너가 되기를 원한다. 그러나 이 응원이 실제 협력으로 이어지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 있다. 바로 ‘온라인 사기’라는 회색지대다.
캄보디아를 거점으로 한 사이버 범죄 조직들은 한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 시민들의 일상을 파괴하고 있다. 한국 사회가 캄보디아를 향해 가장 강하게 요구하는 것은 거창한 외교적 수사가 아니라, 이 문제에 대한 단호한 조치다. 특히 한국인 범죄자들에 대한 실질적 검거와 송환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회색지대 전략은 중립이 아니다. 방관이다.
그리고 방관은 결국 우군을 잃는 가장 빠른 길이다. 한국인들의 진심 어린 응원에 답하는 가장 분명한 메시지는 ‘온라인 사기 근절을 위한 가시적 성과’다.
캄보디아는 종종 강대국 사이에서 ‘중립’을 표방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국의 사례를 보라. 한국은 겉으로 보면 균형 외교를 하는 듯 보이지만, 그 바탕에는 한미동맹이라는 명확한 안보 축이 존재한다. 만약 한국 땅에 중국군이 주둔하려 한다면, 한국인들은 다시 총을 들고 거리로 나설 것이다.
진정한 주권은 강대국 사이에서 모호하게 줄을 타는 데서 나오지 않는다. 자국의 가치와 원칙을 지키기 위해 누구와 손을 잡을지 명확히 선택할 때 비로소 주권은 실체를 갖는다. 캄보디아 역시 ‘의존’을 ‘중립’으로 포장하는 단계에서 벗어나, 국제적 기준과 규칙에 부합하는 명확한 원칙을 세워야 한다.
캄보디아의 진짜 전쟁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있다. 바로 범죄 조직과 검은 돈, 회색지대를 소탕하는 전쟁이다. 이 껍질을 벗지 않는 한 새로운 시대는 열리지 않는다. 지금 당장의 달콤한 이익을 위해 눈을 감는다면, 국제 사회의 신뢰라는 더 큰 성장 기회를 잃게 된다. 범죄 조직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단속, 한국을 포함한 국제 사회와의 전면적 수사 협력, 법치 시스템의 투명성 증명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과거의 전장에서 증명된 용기는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현대 국가의 용기는 지금 이 순간, 자국 내부의 범죄 구조를 끊어내는 결단에서 증명된다. 과거의 ‘전쟁 근육’으로는, 현대의 ‘신뢰 전쟁’에서 결코 이길 수 없다.
필자소개(김대윤)
캄보디아 화장품협회(CCA) 고문
캄보디아에서 왕립법률경제대학교 대학원(사법 전공)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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