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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인터뷰] “콩을 팥이라 해도 믿어줘요”...‘바탐의 여왕’ 공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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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회 작성일 26-08-26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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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인터뷰] “콩을 팥이라 해도 믿어줘요”...‘바탐의 여왕’ 공자영


35년간 인도네시아 바탐서 여행·외식·관광·물류 사업 일궈내
한국어 강사로 시작해 ‘바탐의 여왕’ 되기까지…“사람을 얻었기에 가능”
코로나때 오토바이 기사들에게 하루 1500개 도시락 지원…한인사회 위상 높여
“한국 기업들, 바탐서 사기당하지 않게 돕는 길잡이 역할 하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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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바탐시에 35년째 거주하는 공자영 회장.[왕길환 기자]인도네시아 바탐시에 35년째 거주하는 공자영 회장.[왕길환 기자]

싱가포르 타나메라 페리 터미널에서 배를 타고 1시간 남짓 물살을 가르면 인도네시아 바탐섬에 닿는다. 인도네시아 영토이지만 싱가포르와 사실상 하나의 경제권으로 묶여 움직이는 섬이다. 이곳은 주말이면 휴양을 즐기려는 싱가포르 관광객들로 붐비고, 평일에는 제조업과 조선, 물류 산업이 활기차게 돌아가는 자유무역지대(FTZ)다.

이 섬에서 35년 가까이 거주하며 여행업을 등을 하면서 사업 영역을 넓힌 한국인이 있다. 한인회장을 맡아 오랫동안 한인사회를 이끌고, 직접 한국문화원을 설립해 현지인들에게 한국어와 태권도, 한국 문화를 전파해 온 공자영 회장이다. 현지 관가와 정·재계, 그리고 일반 시민들까지 그를 부르는 별명은 다름 아닌 ‘바탐의 여왕’이다.

13일, 세계한인경제무역협회(월드옥타) 동서남아지역경제인대회가 열린 싱가포르 그랜드 콥튼 워터프론트호텔. 개막식에 앞서 호텔 카페에서 만난 공 회장은 ‘여왕’이라는 별명 이야기가 나오자 수줍은 표정으로 손사래를 쳤다.

“제가 무슨 특별히 대단한 일을 해서 여왕이라고 부르는 게 아니에요. 3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바탐 섬에 살면서 현지 사람들과 울고 웃다 보니, 이제는 저를 가족처럼 믿어주는 거죠. 지금은 바탐 시민들이 제가 ‘이건 콩이 아니라 팥입니다’라고 해도 믿을 정도예요. 그만큼 오랜 시간 쌓아온 ‘신뢰’가 만든 별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바탐의 여왕'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공자영 회장.'바탐의 여왕'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공자영 회장.

28만 명 시골 섬에 한국어 강사로 첫발을 내딛다

경남 창녕 출신인 공 회장은 마산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고 대구에서 대학을 졸업했다. 한국어 교사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던 그가 바탐이라는 낯선 땅에 처음 발을 디딘 것은 1998년 말이었다. 

당시 바탐은 현재 인구(약 140만 명)의 5분의 1 수준인 28만 명에 불과한 한적한 시골 섬이었다. 지금은 첨단 산업도시로 거듭나고 있지만, 그가 첫 발을 내디뎠을 때만 해도 도로와 편의시설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오지나 다름없었다.

“처음부터 사업을 하겠다는 거창한 꿈을 안고 온 게 아니었어요. 현지 여행사 직원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친게 관광업에 발을 딛게된 계기였어요. 딱 6개월만 고생하고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사람 인연이라는 게 참 희한하더라고요. 그 6개월이 35년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중국계 회사에서 한국어 강사로 일하던 그는 자연스럽게 여행업과 인연을 맺었다. 바탐을 찾는 한국인 관광객과 비즈니스 출장객들을 상대하며 현지 관광 자원의 가능성을 보았고, 일을 배운 지 10년쯤 지나 독립해 자신만의 여행사인 ‘인코 바탐’(INKO BATAM)을 설립했다.

싱가포르에서는 배로 1시간 남짓 걸린다. 바탐섬 구글맵 지도.싱가포르에서는 배로 1시간 남짓 걸린다. 바탐섬 구글맵 지도.

작게 시작했던 여행사는 해를 거듭하며 성장했다. 코로나19로 타격을 입긴했지만, 현재 50여 명의 현지 직원과 소형과 대형 버스 20대의 관광버스를 보유한 바탐시의 대표 여행사로 자리 잡았다. 뿐만 아니라 관광객들의 동선에 맞춰 한식당과 현지 전문 식당을 차렸다. 최근에는 바탐 국제공항 내에 기프트숍, 카페, 미니소(다이소 형태의 생활용품점)까지 입점시키며 사업군을 다각화했다.

“손님들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고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업이 늘어난 겁니다. 관광객이 오면 식사할 양질의 식당이 필요하고, 이동하려면 안전한 버스가 필요하고, 돌아갈 때 기념품을 살 쇼핑몰이 필요하잖아요. 하나를 시작하면 거기에 필요한 다음 요소가 보였고, 그렇게 하나씩 늘려간 것이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내 진짜 재산은 통장 잔고가 아니라 신용과 인맥”

타국에서 사업을 넓혀가다 보면 현지인과의 갈등이나 문화적 차이로 고초를 겪기 마련이다. 그러나 공 회장은 35년간 단 한 번도 현지 직원들이나 주민들과 큰 마찰을 겪은 적이 없다. 그 비결을 묻자 그는 망설임 없이 ‘사람’을 꼽았다.

“제 재산이 뭐냐고 물어보신다면 통장에 든 돈이 아니라 ‘신용’과 ‘인맥’이라고 답하겠습니다. 우리 회사에는 20년 넘게 함께 일해 온 현지 직원들이 정말 많아요. 여행업 특성상 사건·사고도 많고 부딪힐 일도 많은데, 늘 그 친구들과 솔직하게 소통하고 가족처럼 챙겼습니다. 제가 힘들 때는 직원들이 버팀목이 되어주었고, 직원들이 어려울 때는 제가 앞장서서 도왔죠. 그 세월이 쌓여 단단한 의리가 됐습니다.”

싱가포르 그랜드 콥튼 워터프론트 호텔에서 인터뷰에 응한 공자영 회장.[왕길환 기자] 싱가포르 그랜드 콥튼 워터프론트 호텔에서 인터뷰에 응한 공자영 회장.[왕길환 기자] 

공 회장의 온기는 사업장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는 바탐 한인회장을 맡아 한인 사회의 정착과 권익 신장을 위해 발로 뛰었다. 무려 8년간 한인회장직을 묵묵히 수행한 뒤 다음 리더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물러났으나, 후임 회장이 개인 사정으로 임기를 채우지 못하게 되자 동포사회의 강한 요청으로 2025년 8월 다시 복귀했다.

그가 한인회장에 출마하며 내걸었던 가장 대표적인 공약은 ‘한국문화원 설립’이었다.

“문화원에서는 현지인들에게 한국어를 무료로 가르치고 태권도 도장을 열었습니다. 제대로 가르치기 위해 한국에서 선교사로 온 부부(태권도 6단)와 서로 협력했죠. 수련생들이 실력이 어찌나 늘었는지, 인도 캘커타 대회에 나가서 우승을 차지할 정도였습니다.”

한국문화원은 바탐 현지인들에게 한국 문화를 직접 체험하는 거점이 됐다. 한국어와 태권도뿐만 아니라 K-POP, 한국 전통 무용, 한국 음식 만들기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꾸준히 진행했다.

지난 8월 7일부터 11일까지는 바탐의 대형 쇼핑몰에서 ‘코리안 페스티벌’을 개최했다. 닷새간 열린 행사에서는 K-POP 커버댄스 경연대회, 태권도 시범, 부채춤 공연, 한복 체험 등이 펼쳐졌다. 무려 3천명이 넘는 현지인이 방문해 한국 문화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이 행사는 5년전부터 매년 열고 있다.

8월7~11일 개최한 코리안페스티벌 포스터.8월7~11일 개최한 코리안페스티벌 포스터.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빛난 선행… 하루 1,500개의 도시락

현지 사회가 공 회장을 인정하고 ‘바탐의 여왕’이라 부르는 결정적인 계기는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시절에 있었다. 당시 바탐 섬 전체가 봉쇄되면서 관광객의 발길이 완전히 끊겼고, 관광객을 태우던 오토바이 택시(오젝) 기사들은 하루아침에 생계 수단을 잃고 끼니를 잇기가 어려웠다.

모두가 굶주림과 공포에 떨던 그때, 공 회장은 한인회를 이끌고 현지 기사들을 돕기 위해 나섰다.

“당시엔 저희 회사도 하늘길과 배편이 다 막혀 정말 죽을 맛이었습니다. 하지만 현지 사람들의 상황은 더 참담했어요. 당장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오토바이 기사들이 일을 못 하니 아이들에게 밥을 못 먹이는 지경이었죠. 우리가 여기서 사업해서 돈을 벌었는데, 그들이 힘들 때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도시락 나눔을 시작했습니다.”

공 회장과 한인회 회원들은 매일 새벽부터 재료를 준비해 하루 500개씩, 3곳의 거점에서 총 1,500개의 도시락을 싸서 반달 동안 오토바이 기사들에게 전달했다.

이 작은 선행은 현지 방송과 언론에 크게 보도되며 바탐 시민들에게 깊은 울림을 줬다. 현지인들 사이에서 "한국인들은 기쁠 때뿐만 아니라 우리가 힘들 때 진짜 친구가 되어주는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뿌리내리게 된 순간이었다.

"바탐에서 한국인이 교통사고가 나거나 이민국에 문제가 생기면 관공서에서 가장 먼저 저에게 연락이 옵니다. 관광청에서도 정책을 세울 때 저에게 자문을 구하죠. 현지 사회와 쌓은 단단한 신뢰가 결국 우리 한인들을 보호하는 가장 큰 울타리가 된 셈입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그는 8월 초, 바탐시로부터 공식 ‘한국 관련 홍보대사’로 임명되는 영예를 안았다.

 8월 초, 바탐시로부터 공식 ‘한국 관련 홍보대사’로 임명된 공자영 회장.[왕길환 기자] 8월 초, 바탐시로부터 공식 ‘한국 관련 홍보대사’로 임명된 공자영 회장.[왕길환 기자]

“한국 기업들이 바탐에서 사기당하지 않도록 다리가 되겠습니다”

공 회장은 최근 바탐 진출을 희망하는 한국 중소기업들을 위해 현지 정착 컨설팅 업무도 병행하고 있다.

“35년 동안 바탐에서 겪은 수많은 시행착오와 제가 구축해 놓은 인맥 네트워크를 이제 한국 기업들을 위해 쓰고 싶습니다. 한국에서 기업인들이 찾아오면 현지 법률부터 토지 분양, 인허가 절차까지 제가 아는 노하우를 전부 풀어줍니다.”

돈을 버는 비즈니스 컨설팅이냐는 질문에 그는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이걸로 돈을 벌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해외에 나와서 현지 사정을 잘 몰라 사기를 당하거나 큰 돈을 날리고 눈물 흘리며 돌아가는 한국 중소기업 사장님들을 너무 많이 봤어요. 그런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게 막아주고 싶을 뿐입니다. 타국에서 고생하는 우리 기업인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세계한인경제무역협회(월드옥타) 활동을 하면서 한국 중소기업들의 제품력이 정말 뛰어나다는 걸 느꼈는데, 그 우수한 제품들이 인도네시아 시장에 안전하게 연착륙할 수 있도록 제 네트워크를 적극 제공할 생각입니다.”

'바탐섬에 온것을 환영합니다'라는 영어 입간판이 선명하다.'바탐섬에 온것을 환영합니다'라는 영어 입간판이 선명하다.

사람을 얻은 곳, 두 번째 고향 바탐을 향한 꿈

인터뷰를 마친 공 회장은 곧바로 바쁜 다음 일정을 챙겼다. 그는 싱가포르에서 열린 ‘2026 월드옥타 동서남아 지역경제인대회’가 끝나고 15일부터 17일까지 행사 참가자 60여 명을 자신의 터전인 바탐으로 초청해 골프 대회와 관광을 겸한 민간 교류 행사를 직접 주최한다. 싱가포르와 바탐, 그리고 한국을 잇는 민간 외교관 역할을 자처하고 나선 것이다.

35년 전, 아무런 연고도 없이 단신으로 넘어왔던 시골 섬 바탐에서 공 회장은 자신의 청춘과 인생을 바쳐 단단한 삶의 성곽을 쌓아 올렸다.

“저는 이제 돈을 더 많이 버는 것에는 욕심이 없습니다. 코로나19라는 엄혹한 위기 속에서도 저희 회사는 단 한 번도 문을 닫지 않았고 직원들을 내보내지 않았어요. 나중에 직원들이 저에게 ‘회장님 덕분에 버텼다’라며 고마워하는데, 오히려 제가 고마웠죠. 그 직원들이 35년간 저를 믿고 함께 뛰어주었기에 오늘의 공자영이 있는 것이니까요.”

인터뷰를 마치며 전달된 그의 마지막 말은, 왜 현지인들이 그를 '바탐의 여왕'이라 부르는지 그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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