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시안= 안성찬 대기자]매주 주말마다 다른 골프장에서 라운드를 한다면? 물론 평일에도 수시로 한다. 선수도 아닌 일반 아마추어 골퍼가 이런 복을 타고 태어났다면 골퍼마니아라면 아마도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하고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주인공은 전 괌 한상(韓商)회장 조진영(65) K&A 대표이사. 이렇게 골프가 가능한 것은 한국이 아닌 괌이라서 그렇다. 괌에는 명문 망길라오CC 등 5개 골프장이 있다. 모두 일본 대기업에서 운영했는데, 올해 경남 통도의 통도파인이스트 컨트리클럽을 갖고 있는 한국기업 동일건설에서 한 골프장을 인수해 괌파인이스트 골프앤리조트(회장 김형수)로 명칭을 변경했다. 조 대표는 주로 이곳을 찾는다.
“한국에서 살았으면 이런 골프혜택을 누리지 못했겠죠. 그린피를 비롯해 골프를 즐기기에는 너무 많은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이죠. 하지만 괌에서는 교민들에게 특별 우대를 해주는데다 카트비와 캐디피가 들지 않아 그린피만 해결하면 되니까 저렴하게 골프를 할 수 있습니다.”
조 대표는 교민들로 구성된 골프회 4개를 갖고 있다. 15명 내외로 구성된 골프모임은 한마음회를 비롯해 일요골프회, GPG, 정우회 등이다. 주말마다 골프장을 순례하며 기량을 겨루고, 친목을 다진다. 라운드를 마치면 무조건 한인식당에서 만찬을 벌이며 시상식도 갖는다.
사실 조 대표를 보면 적어도 세 번은 놀란다. 괌에서 그를 만나면 처음에는 인상과 외모가 괌원주민이 아닐까하고 착각한다. 하지만 대화를 나누다보면 전형적인 토속 한국인이다. 그리고 괌에 정착하면서 그가 한국교민들을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노력한 일들이 마치 태산(泰山)같다. 특히, 그는 한국에서 오는 지인들이 무엇이 그리 좋은지 오는날부터 가는날까지 라운드를 비롯해 식사까지 온갖 수발을 다 든다.
이유가 뭘까. 그의 답은 명료하다. “혼자 가면 빨리 갈 수 있지만, 여럿이 가면 오래, 그리고 멀리 갈 수 있잖아요.” 아프리카 속담이라면서 “사랑을 함으로써 사람들은 단결하고 하나가 되죠. 또한, 사람 각자에게 있는 보편적인 지성이 연합을 뒷받침해줄 것”이라는 러시아의 대문호이자 사상가 레오 톨스토이의 말을 보탰다.

그가 지금이야 '호사(豪奢?)'를 누리면서 벗들과 그를 아는 모든 이들과 골프를 즐기고 술잔을 기울이지만 처음 괌에 들어섰을 때는 눈앞이 캄캄하고 막막한 시절이 있었다. 2녀 7남매중 5형제가 이런 저런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특히, 막내를 하늘나라고 보냈을 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절망감에 빠져 허우적거리면서 헤어나질 못하기도 했다.
그에게 괌은 어찌보면 운명같은 것이었다. 초창기 한국인들의 해외 이민사처럼. 그가 괌에 첫발을 디딘 것은 1983년 7월이니까 벌써 41년의 세월을 보낸 셈이다. 당시 25살이었다. 매형의 여동생이 국제결혼을 하면서 가족 초청으로 이어졌고, 그도 혜택아닌 혜택을 입은 것이다. 3년 동안 친형이 운영하는 철공소에서 용접기술을 비롯해 건축일까지 밑바닥부터 배웠다. 외국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타고난 체력덕에, 그리고 괌 원주민같은 외모덕에 몸이야 고달펐지만 큰 어려움은 없었다. 힘겨울 때는 스스로 누군들 이런 고생을 하지 않고 어떻게 버틸수 있을까하고 마음을 다독였다. 그리고 '큰 그림'을 그렸다. 말년에 경제적으로 여유있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려면 어떻게든 부(富)를 축적해 경제적으로 자립해야 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1984년 만난 1살 연상의 아내(이영옥)와 3일만에 약혼하고 이듬해 서울에서 결혼했다. 그리고 아내와 함께 괌에서 신혼 살림을 시작했다.
그는 인구가 소수인데다 극한의 3D업종을 꺼리는 괌 특성을 고려해 막노동을 해야하는 건축업에 손을 댔다. 처음에는 막내 동생과 '조브라더스' 회사를 차렸다가 동생을 잃고 나서 회사 이름을 'K&A'로 바꿨다. 이름이 거창하다. 한국과 미국이란다. 한눈팔지 않고 일에만 매달렸다. 개인주택과 상가를 지었다. 쌈짓돈이 모이자 융자를 끼고 상가와 집을 샀다. 그는 건설업에 열중했고, 1986년에 오픈한 슈퍼마켓은 아내가 봤다.
하지만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했던가. 일이 잘 풀리는가 싶더니 1993년 괌에 몰아닥친 태풍 '어마'가 풍비박산을 냈다. 마트가 다 날아가 버렸다.
“정말 막막했습니다. 일손이 잡히지 않았죠. 다만, 가족들은 아무런 피해가 없었으니 그것에 위안을 삼을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역경이든 그 역경에 걸맞는 번영의 씨앗이 숨어 있다'라는 말을 떠올렸죠. 순식간에 모든 것을 날렸지만 튼튼한 몸과 가족이 있으니 재기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자포자기하면 모든 것을 잃는 것보다 더 나쁜 결과가 따라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장애를 극복하고 뭔가를 성취하려면 열렬한 욕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살면서 터특했으니 '할 수 있다'고 믿고 다시 시작했죠. 마트를 조금 줄이고, 건설로 재기를 노렸습니다.”
1996년 집 단층 아파트 6채가 딸린 건물을 매입했고, 2001년 1층 건물에는 대형 슈퍼마켓인 데어 마트(Dairy Mart)를 차렸다.
그는 마트를 하면서 끔직한 일을 3번이나 당했다. 총을 든 강도가 들이닥친 것이다. 이때 아내의 지혜가 돋보였다고 한다. 순간적으로 판단해 현금출납기를 열고 다른 쪽을 바라보면서 "다 가져 가세요"라고 했다. 그랬더니 강도는 돈만 갖고 달아나 버렸다고. 말로만, 영화에서만 보던 장면이 현실이 되니까 등골이 오싹하고 식은 땀이 줄줄 흘렀던 것이다.

어느 정도 사업이 안정권에 들어서자 인맥도 넓히고, 교민들을 위해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시작한 것이 한상 회장이다. 4년간 맡아서 하면서 미국을 비롯해 몽골, 한국 등 세계한상대회를 돌아다니며 견문을 넓혔다. 세계한상대회는 재외동포 경제인과 한국내 기업인이 참석하는 한민족 최대의 비즈니스 네트워크 행사이다.
이런 일을 하면서 골프에 눈을 떴다. 축구 등 스포츠를 즐겼지만 골프입문은 조금 늦은 2006년에 클럽을 잡았다. 축구를 좋아해 괌안인축구협회장과 괌 축구심판을 했다. 2019년에는 한국자유총연맹 괌지부장을, 재괌대한체육회장과 한인회장을 2021년까지 3년간 맡아서 봤다. 아시아한인총엽합회고문도 하고 있다.
그는 유독 해군과 인연이 깊다. 2014년 '해사모'를 만들어 회장을, 괌과 한국을 오가며 사업을 하는 박장순 대표가 부회장을 맡아서 하고 있다. 한인회장을 하던 2016년, 2017년에는 한국에서 해양경찰 최초로 괌으로 훈련온 경찰들을 초청해서 갈비파티를 열어 줬다. 이런 오랜 인연으로 올해 진해에서 해군자녀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그는 올해 잠수함사령관으로부터 '잠수함명예부대원' 직함도 받았다.
2006년 괌 해군골프장에서 머리를 올린 그는 무려 136타를 쳤다. 볼을 거의 굴리고 다니는 자치기 수준이었다. 그러다가 조그만 내기에서 연거푸 깨지자 오기가 발동했다. 날밤을 새워 칼(클럽)을 갈았다. 100돌이 시절에 사이판 골프장에서 파4홀에서 1온을 시켜 이글을 기록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250야드 이상 날리며 싱글핸디캐퍼로 가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000라운드를 더 했다는 그의 베스트 스코어는 버디 5개, 보기 6개로 1오버파 73타다.
애주가인 그도 골프와 술을 선택하라고하면 두말 없이 골프라고 말한다. 골프에 있어서 그는 괌에서는 실력자다. 가는 골프장마다 직원들과 유대가 돈독하다. 그만큼 그들에게 인간적으로, 선물 등 작은 정성으로 우의를 돈독히 한다. 이 때문인지 특별한 일이 없으면 예약시간을 자유자재로 한다. 티오프하는 홀도 자유롭게 선택한다. 그만큼 능력자이기도 하지만 한국처럼 꽉 차지 않고 골프장이 여유롭기 때문이다.

“골프는 흔히 인생에 비유하잖아요. 내 마음대로 안되는데다 18홀을 도는 동안 온갖 풍파에 시달리기도 하고. 특히, 감정기복은 물론 마음이 열두 번도 더 변하니까요. 하지만 얼마나 멋진 운동입니까. 5~6시간을 현실에서 일탈해 우리들만의 세계를 만들고 있으니까요. 일상의 압박감에서 벗어나 푸르른 잔디에서 경쟁하면서도 담소를 즐기고, 기쁨과 슬픔을 동시에 안겨주기도 합니다. 골프는 정말 단순한 것 같으면서도 복잡하기가 끝이 없는 듯 합니다. 아마도 가장 위대한 스포츠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의 골프예찬론이다.
그는 “배는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합니다. 그러나 배가 만들어진 목적은 안전이 아니라 항해가 아닐까요. 인생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안전을 위해 태어나지 않았으니까. 단 한번뿐인 소중한 인생을 안정과 평안 보다는 거친 풍파를 헤치고 멋지고 신나는 항해를 해나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조진영 대표의 꿈을 무엇일까. 그는 소박하다. 아내와 아직 미혼인 2녀1남을 두고 있는 가정이 평온하고, 모두 건강하길 바란다. 또한, 벗들과 골프를 즐기면서 괌 교민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할까하는 봉사에 대해 늘 생각한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괌을 찾는 모든 지인들의 주인이자 하인이 되고 싶다고 한다. 아니, 가족처럼 평생 동반자이고 싶다. 그의 버킷리스트는 하루도 거리지 않고 365일 라운드를 해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