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가다] 압사라가 춤을 추는 ‘신들의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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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7회 작성일 25-06-23 09:23본문
[그곳에 가다] 압사라가 춤을 추는 ‘신들의 왕국’
덜컹거리는 침대버스와 툭툭이를 타고
앙코르와트를 가다
- 황복희 기자
- 입력 2025.06.22 14:31
- 수정 2025.06.22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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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와트의 정문은 서쪽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은 반대편 동문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황복희 기자]](https://cdn.dongponews.net/news/photo/202506/53104_205414_1254.jpg)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서 씨엠립으로 가는 여정은 쉽지않았다. 현지시간 지난 6월14일 새벽 1시 프놈펜에서 출발한 침대버스는 6시간 소요라는 사전정보를 깨고 불과 4시간 30분만에 목적지에 닿았다. 워낙 빠른 속도로 비포장도로를 내달리는 통에 잠은 고사하고 이층침대에 누워있는 것이 고역이었다. 버스 앞쪽에 화장실도 있었으나 잠시 멈췄을때나 이용 가능하지, 달릴때는 용무를 보기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Really? here 씨엠립?” 버스기사는 재차 묻는 것이 성가신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냅다 가버렸다. 다행히 새벽 5시30분인데도 하늘은 훤했다.
1시간30분이나 먼저 도착했으니, 미리 약속해둔 가이드가 정류장에 나와있을리 만무했다. 한참 잠에 빠져있을 시간임에도 프놈펜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사정을 설명했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가이드가 바로 출발한다고 합니다.”
‘지아(Zia)’라는 이름의 캄보디아인 가이드는 첫인상이 순하고 상냥해보였다. “툭툭이가 올때까지 아침식사를 먼저할까요?”
유튜브로, 또 한국식당에서 일하며 배웠다고 하는 그의 한국어 솜씨는 의사소통에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따뜻한 쌀국수로 속을 채운뒤, 가이드와 함께 툭툭이를 타고 씨엠립 시내를 가로질러 가장 먼저 대표사원인 앙코르와트로 이동했다. 중간에 매표소에 들러 37달러를 내고 앙코르유적을 다 돌아볼 수 있는 입장권을 구매했다. 창구에서 구매자의 사진을 찍어 입장권에 넣는게 특이했다. (나중에 사원 입구에서 직원이 사진과 관람객 얼굴을 대조했다.) 우기에 접어들면서 비수기인 씨엠립 거리는 한산했다. 가는 길에 5성급 고급호텔들과 태극기가 걸린 한국영사관도 눈에 들어왔다. 코로나팬데믹을 지나면서 많은 호텔들이 문을 닫았다고 가이드는 전했다. 한때 성업하던 한국식당들도 대다수가 문을 닫고 큰 곳은 몇 군데 안된다고 덧붙였다.


크메르제국의 옛 영광, ‘앙코르와트’
사진으로만 보던 앙코르와트와의 첫 만남은 평생 잊지못할 듯, 선명한 인상을 주었다. 동이 튼지 얼마 안되는 새벽녘, 200m 너비의 인공호수로 된 해자 너머로 다섯 개의 탑이 우뚝 선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호수에도 그 풍경이 오롯이 담겨있었다. 물은 ‘정화’를 의미하는데, 그 물을 건너 만나는 저 곳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궁금했다. 감상에 젖어있는데 가이드의 설명이 귀에 들어왔다. 매년 3월21일 춘분 시에는 일출을 보러 장사진을 이루는데, 절묘하게도 앙코르와트 중앙탑 뒤로 해가 솟아올라 꼭대기에 걸린다고 알려주었다.
인공호수 주변에는 족히 수백년은 되어 보이는 보리수 나무가 줄지어 ‘불교 국가’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가이드가 끝부분이 꼬리처럼 휘어 올라간 보리수 잎사귀를 하나 건넸다. 낯익은 문양 이었다.
드문드문 관광객들이 다리를 건너 사원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해자 너머로 가로 1.3km, 세로 1.5km에 이른다는 장대한 규모의 사원 벽면이 이어지고 있었다. 해자를 조성하며 파낸 흙은 사원을 짓는데 쓰였다고 한다. 보수공사를 거쳐 사람이 다닐 수 있게 개방됐다는 다리를 건너 서쪽으로 향해 나있는 앙코르와트의 정문으로 들어갔다. 앙코르(Angkor)는 ‘왕도’, 와트(Wat)는 ‘사원’을 뜻한다.
“솔로몬왕의 신전에 버금가고, 미켈란젤로 같이 뛰어난 조각가가 새긴 것과 같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인이 세운 것 보다 더 장엄하다.”
1860년 프랑스의 자연학자이자 탐험가인 앙리 무오는 500년간 정글에 묻혀있던 앙코르와트를 발견하고선, 자신이 본 거대 유적을 스케치와 함께 이렇게 기록했다.
열대우림 속에 사방 200m의 인공해자가 둘러친 장방형의 앙코르와트는 12세기초 크메르왕조의 전성기를 구가한 수리야바르만 2세가 ‘신의 궁전’을 표방하며 건립한 힌두사원이다. 힌두신화에 나오는 수많은 신들 가운데 ‘브라마’, ‘시바’와 더불어 3대 신으로 꼽히는‘ 비슈누’ 신을 숭상해 지었다.
설레는 걸음으로 정문을 지나자 푸른 풀밭의 탁트인 공간이 펼쳐지고, 멀리 정면으로 중앙탑을 중심으로 사방에 네 개의 탑이 우뚝 솟은 신전이 눈에 들어왔다. 가이드 지아의 권유로 풀밭 저편 왼쪽에 쭉 늘어선 기념품가게들 중 신전과 가장 가까운 위치의 맨 끝 집으로 가서 야자수로 수분을 보충한뒤 신전으로 걸음을 옮겼다.


신을 향한, 인간의 끝없는 열망
신전 입구를 들어서자 사방으로 회랑이 길게 이어지고 있었으며 회랑마다 천장에는 연꽃 문양이, 사암으로 된 벽면에는 힌두신화의 대서사가 부조로 새겨져 있었다. 인물상들이 하나하나 살아움직이는 듯 생동감 있고 정교했다. 어떤 부조는 선신과 악신이 뱀의 몸둥이를 붙잡고 양쪽에서 겨루고 있었으며, 수리야바르만 2세로 보이는 왕이 병사들과 함께 전쟁터로 나가는 행렬도 있었다. 가이드가 재미난 스토리를 하나 들려주었다. 일부 병사들의 갑옷에 새겨진 작은 연꽃 문양을 가리키며, 유명 패션브랜드 ‘루이00’이 이것을 벤치마킹했다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가방 등에서 보던 문양과 똑같긴 했다.
지옥과 중간계, 천국의 모습도 조각돼 있었다. 지옥의 어떤 인물상은 항아리에서 입속으로 술이 들이부어지고 있었다. 살아생전 술로 소일한 자여서 죽어 쉬지않고 술을 마셔야만 하는 형벌을 받고 있다는 가이드의 해석이 그럴싸했다. 지옥 위 중간계를 지나 벽면 상단 천국에선 힌두신화에 나오는 ‘물의 정령’이자 ‘천상의 무희’인 ‘압사라’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그곳에선 ‘신과의 조우’가 가능할지도
앙코르와트의 상징인 5개의 탑은 힌두신화에 나오는 우주의 중심인 ‘메루’산을 형상화했다고 한다. 모양은 연꽃의 봉우리를 닮았다. 높이 65m의 중앙탑으로 오르는 계단은 경사가 70도 각도로, 오르다가 중도에 포기하고픈 생각이 들 정도로 가팔랐다. 겉면은 보수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한국도 ODA사업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가이드가 전했다.
오르다가 멈추기를 여러번, 40m 정도를 기다시피 올라가자 웬걸, 용기를 내길 백번 잘했다 싶었다. 자칫 앙코르와트의 속살을 못보고 겉모습만 보고 갈 뻔했다. 3층 구조의 앙코르와트에서 1층 미물계, 2층 인간계에 이어 ‘천상계’를 나타낸 이곳은 ‘신의 궁전’이 구현되어 있었다. 당초 힌두사원으로 건립됐으나 15세기 이후 인도에서 소승불교가 들어오면서 불교사원으로 쓰인 까닭에 곳곳에 그 흔적이 남아있었다. 약탈에 의해 대부분 머리가 잘려나간 돌부처상이 대표적인데, 결가부좌로 몸통만 있는 부처상의 손바닥 위에 방문객들이 놓고간 연두색 봉우리의 연꽃이 하나씩 올려져 있었다. 기립한 모습의 큰 부처상 앞에선 신도들이 모여앉아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승려들이 신에게 제를 올리기 앞서 몸을 정갈히 하는 용도로 쓰였다는, 목욕탕처럼 생긴 정방형의 우물도 있었다. 비가 오면 자연히 물이 고이는 구조였다.
이곳에서 굽어보는 앙코르와트와 주변 열대우림의 풍광은 압권이었다. 한때 인도차이나 반도를 호령한 크메르왕조의 웅장한 자취가 푸른 숲만이 무성한 드넓은 자연과 어우러져 인상깊게 각인이 되었다. 900년의 풍상을 거치면서 한때 붉은 색을 띠었을 사원의 석벽은 거멓게 변했으나, 그럼에도 웅장하고 아름다웠다.
반대편 동쪽 문으로 사원을 빠져나와 툭툭이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는 도중에, 가이드가 인공호수를 가리키며 이곳 사람들은 자신의 염원에 따라 물고기를 종류별로 달리해 방생을 한다고 들려주었다. 실례로 장어는 사업이 술술 잘 풀리고 돈을 잘 벌게 해달라는 염원을 담고 있다고.
장어 한 마리 사다가 방생을 하고픈 욕구를 접고, 안젤리나 졸리가 출연한 영화 ‘툼 레이더’의 촬영지인 타프롬 사원으로 향했다. <계속>

*기자는 지난 6월11~13일 프놈펜에서 열린 ‘2025 아시아한인회총연합회·한상총연합회 캄보디아 대회’에 참석해 취재를 마친뒤, 캄보디아의 보물 앙코르와트를 보지않고 돌아올 수는 없다고 판단하여, 현지시간 지난 6월14일 밤 인천행 비행기를 타기 앞서 새벽1시 버스를 타고 씨엠립으로 가서 오후에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프놈펜으로 돌아오는 빡빡한 일정을 잡았다. 그 여정을 상,하에 걸쳐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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